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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각진 생각

START WITH WHY를
다시 읽다.

by 브랜드부스터 켄

회사에서 <START WITH WHY> 책을 모든 팀장들에게 배포했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 <START WITH WHY> 특별 개정판은 손에 쥐는 그립감부터 꽤 두툼한 느낌이다. 표지 디자인은 컬러를 제외하고 큰 변화는 없어보였다.


책을 받은 김에 다시 읽어보았다. TED에서 동명의 강의를 접하고 동명의 책을 사서 읽은지도 10년이 넘은 듯 하다. 책은 같아도 읽는 내가 다르다면 받아들이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온갖 지식에 굶주렸던 과거의 나와, 온갖 지식에 지친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다를까?


WHY는 가진 자에게는 신념이겠지만,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명분'이다. 특히 한국 사극에서 누군가가 일을 도모하려 할 때 단골처럼 나오는 단어는 ‘대의명분’이다. 사전에서 대의명분을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 일을 해야하는, 다수를 위한 큰 뜻’으로 많이 쓰이는 듯 하다. 사극 속 주인공은 새로운 나라를 세울 때, 반란을 일으킬 때, 적대 세력을 숙청해야 할 때 어김없이 대의명분을 필요로 한다. 대의명분은 삼국시대에도, 고려를 세울 때도, 조선을 세울 때도, 대한민국을 세울 때도 어김 없이 등장한다.


우리에게는 왜 대의명분이 필요한가? 어떤 인간도 ‘내가 하고 싶으니까’라는 이유를 말할 수 없기 떄문이다. 그 이유로는 설득이 되지 않을 뿐더러, 설득되지 않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진부하더라도 다소 공익적이고, 자기희생적인 대의명분이 반복적으로 먹힌다. 흥미롭게도 동양의 대의명분은 서양의 공리주의와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다.


‘국가’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사극에서 볼 때마다 ‘저런 공허한 말을 누가 믿지?’라며 채널을 돌리면 어김 없이 뉴스에서도 정치인이 비슷한 말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대의명분은 이끌 수 있는 이유이자, 따를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 인간 사회에 필요하다.


그림3.png 고려의 태조 왕건과 궁예


물론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대의명분만으로는 속지 않는다. 대의명분을 말하면 그에 맞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말과 달리 행동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고 고통스럽다. 다이어트를 선언해도 다음날 치킨 먹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다시 말해 언행일치가 되는 사람은 저절로 주변의 신뢰를 받는다. 대의명분을 선언하고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는 이유다.


<START WITH WHY>는 언행일치하는 리더에 대한 책이다. 저자 사이먼 시넥은 올바른 대의명분부터 실제 행동까지 연결되는 여러 가지 사례에서 귀납적으로 한 가지 이론을 도출하였는데, 바로 ‘골든 서클(Golden circle)’이다. 여기에 뇌과학과 혁신수용모델을 얹어서 주장을 강화을 뒷받침했다. 저자에 따르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우선인 리더와 ‘왜’ 하고 싶은지가 우선인 리더의 성공 확률이 다르다.


그림1.png 사이먼 시넥의 골든 서클


골든 서클의 가장 열렬한 사용자는 광고 에이전시였다. 광고 에이전시의 수익 모델 중 하나는 크리에이티브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상품화하는 제작물이다. 골든 서클은 이 광고가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혁신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근거로 수없이 활용되었다. 특히 상품 판매보다는 기업 PR 광고에 많이 인용되었다. 기업 PR이야 말로 기업의 신념을 소재로 삼아야 하기 떄문이다.


브랜딩 업계도 이 이론을 반겼다. 2010년대부터 수많은 스타트업이 우후죽순으로 탄생하기 전에, 대부분 한국 기업의 사명(미션)은 ‘인류의 행복’, ‘사람의 미래’, ‘기술보국’ 등 실생활의 문제 해결보다는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타입이었다. 이 방향과 차별화하기 위해 브랜딩 업계는 창업자 한 명의 신념이 조직을,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역설하며 근거로 골든 서클을 들었다. 해당 시대의 살아있는 모델은 당연히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을 말하는 ‘스티브 잡스’였다. 요즘은 화성을 꿈꾸는 ‘일론 머스크’가 베스트 프랙티스로 자주 인용된다.


나 역시 골든 서클을 현업에서 수년간 활용했고, 심지어 돈 받고 강의까지 하면서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심지어 브런치 글도 써서 공유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이 이론의 한계를 느낀다. 가장 큰 이유는 조직에 WHY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는 '혁신적 성향을 가진 리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이먼 시넥에 따르면, WHY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오직 혁신적 성향을 가진 사람만이 WHY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의 혁신확산이론(Diffusion of Innovations Theory, 1962)에서 나온 혁신수용모델(Adoption of Innovation Model)을 인용하면, 조직의 2.5%가 혁신가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림4.png


혁신수용모델은 혁신가가 혁신을 수용하면 그 다음 얼리어답터가, 그 다음에 68%에 달하는 다수가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이전 집단이 수용해야 다음 집단이 수용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와도 여전히 2G폰을 쓴다면 지각자에 해당한다. 나는 이 이론을 다음과 같이 확대해석한다.


사람의 혁신수용도는 타고난다


분야별로 다를 수는 있겠다. 어떤 사람은 과감한 옷을 입지만 전자기기의 혁신에는 느리다. 어떤 사람은 새로 나온 라면은 바로 구매하지만 금융 거래는 오프라인 은행 지점에서만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사람의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골든 서클의 한계는 기존 조직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 조직이 혁신적으로 변하려면 리더가 혁신가 성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전체의 2.5%에 해당하는 혁신 성향을 리더가 가질 확률은 극히 낮다. 말로만 혁신을 외치고 전혀 변화가 없는 수많은 리더와 조직이 증거다. 그래서 요즘은 이 이론을 그렇게 많이 인용하지 않는다.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골든 서클의 두 번째 한계는 WHY의 진가가 HOW와 WHAY까지 연결되어야 발휘된다는 점이다. 신념이 아무리 굳세다 해도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괜히 동기 부여나 자기 개발 콘텐츠에서 'Just do it'을 외치는 게 아니다. 신념만큼 행동력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WHY를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WHY를 어떤 방식으로, 무엇으로 실천하는가?’까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서클은 인간 본성의 핵심을 관통하는 통찰력 있는 이론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 하다. 인간 집단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신념과 이를 뒷받침하는 스토리에서 나온다.


이 주장은 사이먼 시넥이 처음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설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에토스’임을 강조한다. 막스 베버는 초월적 신념과 비전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말한다. 조셉 캠벨은 모든 영웅은 신념에 기반하여 고난을 이겨내는 여정을 가진다는 결론을 냈다.


nesha-thich-OAFSfbP7Rb8-unsplash.jpg 이끌 것인가, 아니면 따를 것인가?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주의에서 보이지 않는 신뢰, 명예, 가치 등의 ‘상징 자본’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는 목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변혁선 리더십’을 제시한다. 빅터 프랭클은 쾌락이나 권력보다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며 로고테라피가 가능하다고 봤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따르면, 인간은 상상의 질서를 만들고 그에 따르며 사회생활을 영위해왔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떠오르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타인에게 WHY를 요구하기 전에, 나는 내 WHY를 주저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가? 그 WHY를 실천하고 있는가? 결국 골든 서클은 남을 설득하고 리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돌을 던져 동그랗게 퍼지는 하나의 파문, 동심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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