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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아빠를 보고 싶어 해 줘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잡념

by 이믈

글을 밝게 써야 하는데.

네겐 밝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왜 무게만 잡게 되는 걸까.




한때 왜 살아가야 하는 건지 궁금했다.

살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굳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할 뿐.

꽤 재미있게 살아왔지만, 그저 재미를 위해 살 필요는 없다.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만한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굳이?


태어났는데 죽지 않았으니 살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넌 내게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네 아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가깝게 지내던 사촌형의 부고를 들었을 때도 울지 않았다.

입관 순간까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네 큰아버지는 내가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입관 순간에는 왜 눈물이 났을까.

이제 더 이상 못 본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내게 그리움이 남을 것을 알았다.

작든 크든, 내겐 빈 공간이 생긴다.


너와 네 엄마에게 그런 빈 공간을 주고 싶지 않다.

필요하면 적어도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에 있고 싶다.

곁에 가야 한다면 갈 수 있는 곳에 있고 싶다.


네가 날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

그럼 옆에 있어야지.


네 엄마를 만나고 내겐 친구가 필요 없었다. 네 엄마가 내겐 절친이다.

굳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이 좋았다.

그런데 직장에서 최근 그 질문을 던지게 만들 만큼 힘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좋아했던 일을 떠나기로 했다.


살아갈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를 위해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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