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감정에 취한 이에게.
한때 야구팀의 운영팀장을 맡았다.
머나먼 호주에서, 세미 프로쯤 되는 리그. 그리고 한국 선수로 이루어진 팀.
실패를 겪은 사람들만 모이는 팀이었다.
모두가 프로 야구 선수를 꿈꾸며 수년 동안 야구를 했지만, 결국 되지 못한.
혹은 쫓겨난.
시험을 보고 뽑혀 온 사람이 있고
인맥을 통해 비집고 들어온 사람도 있고
팀에서 모셔온 사람도 있었다.
깨끗하지 못한 길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저마다의 절실함이 있었다.
프로의 세계로 가겠다는.
다들 그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절실함을 표현했다.
그냥 입으로만 절실한 사람이 있었다.
밤마다 한 시간 거리를 택시를 타고 술과 여자를 찾아간다.
한때 십억 넘는 계약금의 재능은, 게으름을 이기지 못했다.
정해진 만큼만 절실한 사람도 있었다.
정해진 훈련 외에 단 하나도 더 하지 않는다.
지켜보는 눈이 있을 때만 절실해지는 이도 있고,
휴식에만 절실한 사람도 있다.
잘 쉬어야 한다며. 다만 잘 쉬기만 했다.
다들 자신의 방식으로 절실했고,
또 절실하다는 감정만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당당했다.
사비까지 들이며 호주에 왔다.
하지만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 앞으로 가질 않는다.
누구나 우사인 볼트 마냥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실하다면 굴러서라도 앞으로 가야 한다.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앞으로 가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잖아.
굴러서라도 가려는 선수가 있었다.
밤낮없이 배트를 휘두른다.
아침에 수백 번, 저녁에 수백 번.
회식 자리 술도 마다하고, 다시 수백 번.
굴러서라도 앞으로 가야 한다.
다만 좀 더 효율적으로 구를 수 있지 않았을까.
구르는 것도 요령이 있고, 기술이 있을 텐데.
무엇보다, 거울 앞에서 굴러 봐야 하지 않을까.
절반만 해도 좋다.
내가 날 봐야 한다.
그저 습관처럼 수백 번 휘두른다고 내가 고쳐지진 않는다.
모두 제각각의 방식으로 절실하다.
절실한 마음에 취해 있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