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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혼자 있을 수 있지?

두시는 안 되겠니

by 이믈

돌을 맞기 직전,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립 어린이 집에 0-1세 반이 새로 생긴 덕분.

하염없이 기다리던 네 엄마 아빠에겐 단비였다.


미안해.

널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을 이렇게 좋아하다니.

사실 우린 널 두 돌이 지난 후에 어린이 집에 보내려 했다.

그런데 네가 크는 것을 보니, 우린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하겠더라.


어린이 집에서 잘 지내는 모습에 안도하면서, 동시에 미안했다.

떨어져 있는 동안 쉰다는 것은, 널 부담스러워한다는 의미 같아서.



네 엄마와 난 연애 3년 중 2년을 떨어져 있었다.

롱디라고들 한다.

한국과 싱가포르, 미국, 호주 4개 나라에서 우린 엇갈렸다.


너무 떨어져 있어 공항에서 어색한 재회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좋으면, 떨어져 있어서 더 애틋하더라.


널 사랑한단다.

떨어져 있으면 더 보고 싶다고 말할 테니 믿어주지 않겠니.



난 네 엄마가 집안일에 매여 있는 것이 기껍지 않다.

삶은 가족뿐만이 아니다. 네 시간도 삶이다.

네 엄마에게 난 아침 차리라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침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 미안할 필요가 없다.


난 네 엄마에게 두 시까지 널 어린이 집에 두자고 말했다.

네 엄마는 싫다고 했다.

지금은 네 엄마의 말을 따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넌 두시 전엔 집에 들어오지 않겠지.

네 엄마의 삶은 네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엄마가 두 시까지 널 어린이 집에 둬도 미워하지 말렴.


네 엄마와 아빠는,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우리 자신.

여러 삶을 살고 있고, 너도 그렇게 될 거란다.


네 엄마와 아빠로만 살지는 않을 거야.

널 좀 더 사랑하기 위함이란다.

믿어줄 거지?


지금은 우리의 아들,

언젠가는 너 자신으로 더 많이 살아갈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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