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시켜라, 난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원래 이런 회사는 아니었다.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어도, 밤을 새우는 일 따위는 없었다.
조금만 집중해서 손을 놀리면 야근도 필요 없었다.
일은 재미있었다.
가끔 사람과 충돌해도, 넘어갈만했다.
월급 많이 주는 회사는 아니더라도, 행복했다.
이상한 클라이언트가 하나 붙었다.
일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키는데, 자신들도 따라가질 못한다.
엉키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책임을 씌워야 한다는 눈길이 보인다.
밤샘 작업이 많아지고 주말이 없어진다.
처음부터 감당하기 어려웠던 업무량.
그런데 사람은 더 줄인다.
갑작스러운 변경이 많아지고, 잦아지는 실수는 내 탓이 된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날 돌아봤다.
그동안 강한 멘털로 인정받아왔지만, 내가 버텨서 주어진 것은 없다.
일은 더 주고, 책임은 더 얹고.
실수를 트집 잡아 깎아내리기만 하지.
멘털 강하다고 드러내며 살 필요가 없다.
강철도 쿠크다스도 제때 쉬고 회복하며 살아야 한다.
내겐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고, 가족들에게 강철이 되어야 한다.
직장에선 나 자신을 소중히 보듬고, 행여 바스러질까 조심조심 아껴야 한다.
난 일을 잘해. 빠르지.
그러니 내가 업무 시간에 일을 다 못하는 건 사람을 뽑지 않는 네 탓이지, 내 잘못은 아냐.
퇴근 시간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면 난 가루가 되고 말 거야.
직장에서 난 쿠크다스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