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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감정적 투자와 리뎀션

스포츠 마케팅, 더 깊숙이

by 이믈

스포츠에서도 스토리는 중요합니다.

선수가, 경기가 어떤 스토리를 가지는 지에 따라 팬들의 몰입도가 달라지죠.


단순히 "경기를 이긴다"는 스포츠의 본질이라면, 오히려 스토리가 이 본질보다 더 앞선 스포츠가 있습니다.

바로 프로 레슬링입니다.


프로 레슬링은 짜인 각본을 수행하는 연극이라는 비판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이기도 하죠.


프로 스포츠가 결국 팬들의 즐거움의 극대화를 최종 목적으로 한다면,

프로 레슬링은 정말 프로페셔널한 드라마일지도 모릅니다.


테드(TED)에서 WWE의 "트리플 H"를 인터뷰했습니다.


https://www.ted.com/talks/paul_triple_h_levesque_patrick_talty_inside_wwe_s_storytelling_machine?subtitle=en


WWE가 캐릭터의 생성과 서사의 부여에 매우 공을 들인다는 것은 굳이 프로 레슬링의 팬이 아니라도 알 것입니다.

트리플 H는 캐릭터 아크를 이야기합니다.


캐릭터 아크 (등장 → 변화 → 클라이맥스)

단순히 “강한 사람이 이긴다”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되지 못합니다. “어떤 인물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이겼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악당 혹은 영웅 캐릭터가 단순히 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이 감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스토리의 흐름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When you walk into that ring, or walk onto that stage, you’re not just performing a move — you’re telling someone … your story.”

(당신이 링에 들어가거나 무대에 설 때, 단지 기술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즉, 캐릭터 아크란 캐릭터 설정 → 갈등 제시 → 변화 및 해결 → 팬의 감정적 보상 구조의 총체적인 설계입니다.


여기서 오늘 가장 중요하게 짚어볼 개념이 나옵니다.

바로 "감정적 보상" 그리고 "리뎀션 (Redemption)"입니다.


감정적 투자(Emotional Investment)란 무엇인가

감정적 투자는 관객이 단순히 결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상황·갈등 등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공감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프로 레슬링에서는 단지 기술이나 승패보다, 그 인물이 왜 싸우는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가 중요합니다.


감정적 투자를 이끌어내는 구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 캐릭터에 대한 배경·동기: “이 인물이 왜 여기까지 왔는가?”라는 질문이 관객의 머리와 마음을 움직입니다.

- 구체적인 갈등: 단순히 ‘누가 이기나’가 아니라 ‘왜 싸우나’, ‘무엇을 걸었나’여야 합니다. 긴 시간 동안 쌓인 이야기일수록 감정적 투자가 커집니다.

- 연결감과 누적된 서사: 관객이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고, “이전에 저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지”라는 인지가 있을 때 그다음 단계에서 더 강한 반응이 나옵니다.


> 감정적 투자가 크면 단순히 ‘오늘 이겼다’에서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함께했다’, ‘그 인물의 변화를 지켜봤다’고 느끼게 됩니다.


예시

- ‘언더독(Underdog) 캐릭터’가 오랫동안 고통받고 실패하다가 결국 승리하는 구조는 늘 사랑받습니다. 관객이 “이 사람 고생 많았구나”라고 느끼고, 그 고생 끝에 승리했을 때 관객의 만족감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 캐릭터가 ‘영웅’ 혹은 ‘악당’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변화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리뎀션(Redemption)이란 무엇인가

리뎀션은 문자 그대로 ‘구원’, ‘되찾음’, ‘회복’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가 실패·배신·타락 등의 경로를 거쳤다가 다시 일어나거나 정의·명예 등을 되찾는 구조를 뜻합니다. 이 구조가 작동할 때 감정적 투자는 극대화됩니다.

레슬링 스토리텔링에서 리뎀션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관객이 “이 사람은 이미 망가졌거나 실패했다”라는 전제를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이 다시 맞서 싸우거나 바뀌려는 시도가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리뎀션 구조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저 사람도 달라질 수 있다”라는 메시지는 관객에게 희망 혹은 응원할 이유를 제공합니다.

승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가 의미가 있었다”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즉 리뎀션이 있어야 관객이 “봤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예시

- “회복된 트라우마”나 “과거의 적이 동료가 된다” 같은 서사가 기사를 작성할 때 가장 사랑받는 리뎀션 구조입니다.

- ‘언더독 → 패배 → 재기 → 승리’ 형태는 클래식하지만 효과적인 리뎀션 서사입니다. 예컨대 기사에서 언급된 Daniel Bryan의 WrestleMania 도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 예로 쓰였습니다.



감정적 투자 + 리뎀션이 맞물릴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가

두 개념이 결합될 때, 관객은 단순 엔터테인먼트 소비자를 넘어서 ‘이 캐릭터의 여정을 지켜본 증인’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 경우 다음과 같은 효과가 생깁니다:

몰입도 증가: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 가능성까지 보이면 관객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기대감과 불안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감정적 보상: 리뎀션이 성공했을 때 얻는 감정적 만족은 단순 승리보다 강합니다. “이겼다”보다 “해냈다” 느낌이 크기 때문입니다.

관객의 충성도 상승: 이렇게 몰입된 관객은 단발 경기를 넘어서 “저 인물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다음 이벤트도 본다”라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서사 지속성 확보: 리뎀션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변화 혹은 새로운 위기와 연결될 수 있어 이야기의 지속성이 생깁니다.


실제 레슬링 내 적용 구체적 사례

사례 1: 언더독의 여정

Daniel Bryan는 ‘작고 덜 강해 보이는’ 선수로 시작해 팬들에게 응원을 받으며 결국 메인이벤트에 진출한 이야기로 쓰입니다. 이 과정이 단순히 기술이나 타이틀 획득만이 아니라 팬들이 “이 사람이 해냈으면 좋겠다”라고 느끼게 만든 여정을 만들어 줍니다.

사례 2: 캐릭터 변화와 리뎀션

“캐릭터가 단순히 강자를 이기는 게 아니라, 자기 약점과 싸우고, 과거의 판단을 뒤엎고, 다시 일어선다”라는 서사가 리뎀션 구조로 작동합니다.

사례 3: 감정적 투자와 팬 반응

심리학/팬덤 연구에서는 팬들이 레슬링을 보며 느끼는 감정적 투자와 향수가 리뎀션 서사와 연관된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과거의 부정적 장면이 이후의 승리로 보상된다”는 표현이 팬 기억과 감정 반응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적 시각 및 유의점

리뎀션이 너무 빨리 혹은 부자연스럽게 제시되면, “이야기가 억지스럽다”라고 느낄 수 있고 감정적 몰입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달 만에 ‘패배→승리’ 구조가 반복된다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감정적 투자가 강한 만큼, 그 여정이 중단되거나 투명성이 떨어지면 팬의 실망감이 커집니다. 즉 “이 사람 왜 이렇게 바뀌었지?”라는 의문이 생기면 신뢰가 하락합니다.

리뎀션이 승리만으로 끝난다면 지속성이 떨어지며, 관객은 “다음엔 뭐지?”라는 느낌보다 “이번이 마지막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로벌 플랫폼일수록 감정 코드나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리뎀션 구조를 각 문화권에 맞게 설계하지 않으면 반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에도 어떤 서사를 부여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프로 레슬링을 짜고 치는 사기극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캐릭터를 만들고 서사를 부여하는 과정은 결코 무시할 수 없죠. 스포츠라는 정의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프로 레슬링은 이미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드라마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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