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아홉수 우리들을 읽고
82년 11월 생인 내게 2012년 만 29세의 한 해는 이마에 새겨진 흉터 같다. 그 해 난 만취한 채로 지하 계단을 굴렀고, 날 찾아 헤매던 후배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뼈까지 드러난 이마 그대로 이 세상을 등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해 초, 6년을 만나던 여자친구가 떠났다.
이미 한번 떠났다 돌아온 사람은 늦은 군생활도 기다려주었다.
기약 없는 고시 생활도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돌아오면 공부가 아닌 게임을 하고 있던 내가 벌레 같다 했고, 난 그레고리 잠자가 되어 그대로 그녀를 보내주어야 했다.
의대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했지만
기다려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의 결합에 고시라도 보겠다 했다.
그 시간은 내 인생 가장 어두운 시간이 되었다.
날 고시에 묶어두었던 사람이 떠나자 어두컴컴한 우물 속에 웅크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자발적으로 찬 족쇄를 열어주며 떠났다.
글을 쓰고 싶었다.
신문사 인턴을 지원했지만 만 29살의 날 반기는 곳은 신문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곳뿐이었다.
그러다 만난 인연은 돈 만원이 없어 천 원짜리를 끌어모으다 떠나보냈다. 매력 넘치던 그 사람의 중동 항공사 취직을 도와주고, 합격 소식을 듣고 연락을 끊었다.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
지독한 아홉수의 터널 속이었다.
그러다 출구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비상구 표시등 같은 사람을 만났다.
언론사 같지 않은 언론사에서 함께 도망쳐 작은 회사에서 함께 굴렀다. 우린 매일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만이 주제였고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회사의 갑작스러운 인수 과정에서 상대방이 필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그 형의 잔류. 난 그 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그 대화의 시간들은 내가 도전에 겁먹지 않게 해 줬고, 난 무모한 맨땅 헤딩 끝에 SBS에 올림픽 방송 작가로 시작해 능력을 인정받아 모바일 축구 해설과 라디오 패널까지 갈 수 있었다.
그 인연은 이어져 내게 SBS에 스포츠 칼럼을 쓸 수 있게 해 주었고, 자신감 탄력을 받아 호주 유학을 결정했다.
늦었고, 돌아왔지만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스물아홉의 2012년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서른에 즈음하여 아홉수의 흉한 상처에도 날 지탱하는 것은 나에 대한 내 사랑,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내 주변의 사람. 스물아홉은 지나가고 추억으로 남았다.
웹툰 아홉수 우리들의 우리들에게도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