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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네 살, 혹은 사랑스러운 네 살

그냥 안아줘

by 혜솔

39개월, 미운 4살이라고 하던가, 미친 4살이라고 하던가.

아침이 무서울 때가 종종 있다. 자고 있는 동안 출근한 엄마를 찾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엄마는 출근했다고 말하면 바로 인정하고 마음을 추스르니까. 내가 무서운 건, 할머니 누워! 옆에 누워! 하면서 세수하고 양치하는 시간을 자꾸 미루는 거다.

눈 뜨자마자 아침 메뉴부터 말하는 아이인데 요즘은 먹는 거보다 더 누워있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옆에 누우라고 칭얼댄다. 물론 잠시 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 조금 뒹굴 거리다가 보면

"배고파요 할머니 베이글 구워 주세요.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그냥 동그란 거 주세요"라고 말할 테니까


그런데, 오늘은 모닝빵 반쪽을 가지고 1시간을 식탁에 앉아있다. 표정놀이를 하는지 윙크를 했다가 입술을 내밀었다가 눈을 감기도 하며 뭉그적거리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귀엽고 이쁘기는 하지만 시간은 9시를 넘어가고 있다.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참기도 힘 들고 급기야 소리를 질렀다.

"어린이집 갈 거야 안 갈 거야? 양치는 언제 할 건데? 옷은 안 갈아입어도 돼?"

들은 척도 안 한다.


가고 싶으면 가고, 싫으면 안 가도 되니까 네 마음대로 해! 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 대신 할머니는 볼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하니까 준비할게. 하고 말하자마자 "가지 마~ 나가지 마~" 하면서 울기 시작한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실컷 울어. 왜 우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어린이집도 안 갈 건데, 울면서 집에 있어" 나는 화가 나서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바로 쫓아와서 통곡을 한다.

"할머니 미안해요." 이 말이 나오면 끝나는 건 줄 알겠지만 이제 시작이다.

"뭐가 미안한데? 로리가 뭘 잘못했나?"

"내가 음식을 늦게 늦게 먹고 양치 안 해서..."

"그래? 그럼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니까 양치하고 옷 입고 어린이집 갈 거지?" 얼른 부드럽게 말을 바꾸어 달랬다.

"아니, 안 갈 거야. 앙~ 안아줘, 안아줘~"

욕실이 떠나갈 듯 울어댄다. 종종 이러기는 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나 생각해보기도 했고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물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가기만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잘 놀고 잘 먹고 잘 잔다는 것이다.

"싫어, 안아주지 않을 거야. 지금 해야 할 일은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 입어야지. 늦었는데?"

아이는 더 크게 더 요란하게 울어댄다.

"안아! 안으라고! 그냥 안아달라고~" 단호하게 그냥 안아달라고 악을 쓰는 아이를 안았다.

그러자 숨을 크게 쉬면서 스스로 진정하려고 애쓰는 모습, 무엇이 이 아침에 이 꼬맹이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가 그냥 안아주면 좋겠어"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래 그래, 할머니는 그냥 안아주면 되는데 하라고 하는 게 너무 많았지? 미안해~"

서로 미안하다고 한 후에야 욕실로 향했다. 10시가 넘어서야 어린이집에 도착.

"할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사랑해요~" 선생님 손을 잡고 들어간다.


혼자 산책을 하며 생각했다. 뭘까. 아침마다 전쟁을 하고는 오후엔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로리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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