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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흘러가는 삶, 그림책에서 만나다

지미 리아오의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 을 읽고

by 혜솔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일이 나에겐 현실과 꿈 사이에 걸쳐 있는 듯한 묘한 경험이다.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고, 어둠 속에서 빛의 파편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은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다른 차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영화관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감정을 공유하기보다, 집에서 조용히 영화를 보는 편이 오히려 내게는 더 편안하다. 스크린의 압도감보다는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방식이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 권의 그림책이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대만의 그림책 작가 지미 리아오의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을 만난 것이다. 이 책은 2020년 볼로냐 라가치상 시네마 특별상을 수상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부터 강렬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그림들이 눈을 붙잡았다. 마치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앞에서 스크린이 열리고, 장면들이 쉼 없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IE003522598_STD.jpg ▲책 표지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 ⓒ 오늘책

책 속의 영화관은 그저 영화를 보는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인생이 스며 있는 따뜻한 장소였고, 그 안에는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이 모두 하나의 장면처럼 담겨 있다.


책의 첫 장에는 "세상에 영화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나 역시 삶 속에서 영화를 떠올렸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때로는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내 마음을 흔드는 또 하나의 언어였음을 생각했다.


책을 넘기다 마주한 구절,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인생의 슬픈 눈물을 전부 영화관에서 흘렸다"라는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의 눈물은 어디에서 흘렀을까. 누군가는 영화관이 그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집 안 작은 방에서, 혹은 일상의 한 귀퉁이에서 내 눈물을 흘렸지만, 결국 그 순간들은 모두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음을 책이 일깨워주었다.


지미 리아오의 그림은 글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때로는 짙은 흑백의 대비로 공허와 상실을 표현하고, 또 어떤 장면은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따뜻한 희망을 건넨다. 그림 한 장 한 장이 영화의 프레임처럼 이어지며, 독자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낸다. 나 또한 그 속에서 잊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오래전 웃었던 순간, 아프게 지나간 시간, 그리고 아직 다 오지 않은 미래의 장면들까지.


이 책의 특별함은, 영화라는 소재가 단지 장식적 장치에 그치지 않고, 인생 그 자체를 관통하는 시선으로 확장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영화관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이는 거대한 멜로 드라마를 살아가고, 또 어떤 이는 짧지만 강렬한 단편을 이어간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우리의 삶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단 한 편의 영화라는 것을. 때로는 내가 감독이 되어 삶을 연출하고, 때로는 관객이 되어 그 흐름을 바라본다. 그 모든 장면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이 책은 인생을 한참 살아온 어른들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당신의 인생은 어떤 영화인가?"라는 물음은 가볍게 넘길 수 없었고, 나 자신에게 오래 머물렀다.


나는 여전히 영화관보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언젠가 또 다른 영화관에 앉아 내 인생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삶은 매 순간이 영화이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자 감독인 나.

내 인생이라는 영화관에서 어떤 장면이 상영되고 있는지, 오늘도 나의 자리에 앉아 그 빛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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