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테 멜레세의 <키오스크>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 시간을 굳이 나눠 본다면 세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은 학교와 집이라는 작은 울타리 속에서, 청년기와 중년기의 대부분은 가족과 집이라는 또 다른 울타리 속에서, 그리고 지금은 넓은 세상을 돌아본 뒤 다시 새로운 가족과 함께하는 집에서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결국 나의 삶은 언제나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맴돌며 흘러왔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나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아마도 주어진 울타리 안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도, 틈틈이 창밖을 바라보며 다른 세상을 상상했을 것이다.
아네테 멜레세의 그림책 <키오스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그 그림 속에 머물렀다. 작은 키오스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주인공 올가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그녀가 지키던 작은 창은, 어쩌면 내 안에도 늘 존재해 온 창이었을지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은 때때로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이것이 삶의 전부일까'라는 의문을 자라게 한다. 나에게도 그런 물음이 고개를 든 순간이 있었다.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며 하루하루를 쌓아갈 때, 반복되는 삶의 무게 속에서 창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갈망은 더욱 커졌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시절'의 가장 큰 내적 풍경이었을 것이다.
<키오스크>는 어린이 그림책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멜레세는 올가라는 여인을 통해 꿈과 우연이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올가는 키오스크 안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때로는 여행 잡지를 펼쳐 황홀한 석양의 바다를 상상하며, 키오스크라는 작은 집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키운다.
그러던 중 사건은 뜻밖에 찾아온다. 키오스크 자체가 달팽이집처럼 그녀와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올가는 키오스크를 들고 산책을 나서고, 우연한 사고로 떠밀려 도착한 해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석양을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파는 그녀의 모습은, 갇혀 있던 삶이 다른 풍경으로 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멜레세의 그림은 이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한다. 강렬한 색채와 기발한 구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적 변화와 감정을 오롯이 드러낸다. 덕분에 이 책은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큰 울림을 전한다. 우리 삶의 전환점 역시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우연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키오스크>는 꿈을 찾는 여정이 반드시 직선적일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뜻밖의 사건이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모든 연령대의 독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은유처럼 다가온다.
책장을 덮고, 나에게도 키오스크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키오스크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통로이자, 잊지 않기 위해 늘 열어보는 창일 것이다. 그 안에는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이 있고, 내가 평생 꾹꾹 눌러써온 일기장이 있다. 집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쌓인 기억들이 곧 나의 키오스크다. 그 안에서 나는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왔다.
오늘도 나는 책상 서랍을 열듯, 조용히 나의 키오스크를 들여다본다. 그 속에는 지나온 시간이 차곡차곡 접혀 있고, 다시 꺼내야 할 꿈의 조각들이 숨어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묻는다.
"당신의 키오스크는 어디에 있나요? 그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