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요괴 연대기' 전시관람
귀염둥이 로리와 함께 화성시 향남복합문화센터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떤 그림책을 만날까? 손자의 손을 잡고 현관 앞에서 하나, 둘, 셋! 하자 도서관 문이 열렸다. 어? 현관문이 열리자 신비한 거울 하나가 우리를 맞았다. 천정에 설치된 조형물도 있었다. 뭐지?
로비 중앙에 설치된 그 거울은 단순한 반사면이 아니었다. 눈처럼 생긴 원형 장치가 미묘하게 움직이며 우리를 응시했다.
"할머니! 무슨 일이야? 왜 여기에 이런 게 있지?"
'포스트모던 요괴 연대기'
도서관 출입구 옆에는 '포스트모던 요괴 연대기'라는 포스터가 세워져 있었다. 10월 28일부터 12월 7일까지, 경기도 화성시 향남복합문화센터(향남복합문화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이한 전시회를 로리와 나는 얼떨결에 관람하게 된 것이다. 이 전시는 화성시문화재단과 플랫폼 에이가 공동 주최한 '2025 밖에서 만난 예술사업' 기획전시였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왔다가 뜻밖의 전시를 만났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벽면엔 귀엽고 기묘한 요괴 캐릭터들이 가득했고, 색과 형태는 장난스럽지만 어딘가 불안했다. 기이하고 요괴스러우면서도 앙증맞고 귀여운, 그 모호한 이중성이 전시장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열한 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100여 점의 작품 속에는 한국 고전 설화의 요괴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웃기지만 조금 무서운 존재인 요괴, 도깨비, 귀신, 이들은 모두 현대의 감정과 사회를 상징하는 '포스트모던 요괴'였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요괴들과 친해져 볼까?
정우원의 'The Abyss' ― 나를 응시하는 거울
가장 먼저 발걸음을 붙잡은 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만난 정우원 작가의 작품 'The Abyss'였다. 그것은 일반적인 거울이 아니다. 거울 속에는 실제로 움직이는 키네틱 미러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자가 거울을 바라보는 순간, 거울 역시 동시에 나를 바라본다. 그 순간 나는 '보는 자'에서 '보이는 자'로 바뀐다.
나는 로리와 그 앞에 서 있었다. 빛이 깜박이고, 거울 속 동공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눈동자 같은 금속 표면이 떨릴 때, 내 얼굴이 낯설게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익숙한 현실이 순식간에 요괴의 세계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한마디로 정우원의 거울은 '시선의 요괴'다. 인간과 기계, 관람자와 피관찰자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그 속에서 느낀 빨려 들어가는 감각, 그것은 현대인의 불안과 자기 응시의 메타포였다. 로리는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면서 자꾸만 그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우자이의 '가방 할아범' ― 웃음 속의 공포
한쪽 벽면에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그중 단연 눈에 띈 것은 우자이 작가의 '가방 할아범'이다.
옛날 설화 속 '망태 할아버지'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 아이들이 느끼는 학업 스트레스를 '가방 속에 숨어 있는 요괴'로 형상화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자주 듣는 소리가 있었다. '자꾸 울면 망태 할아범이 잡아간다'는 어른들의 말이다. 그런데 이 요괴, 가방 할아범은 더 이상 아이를 잡아가지 않는다. 대신 가방에 들어가 아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공부가 두렵고, 학교가 괴로운 이유가 이 요괴 때문이라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우자이 작가의 상상력은 유쾌하면서도 사회적이다. '외바리' '아이스크림' 같은 요괴들은 사춘기의 불안, 다이어트 강박, 욕망의 그림자를 상징한다.
이 요괴들은 도시를 배회하며 인간의 욕망을 비춘다. 그들의 세계는 만화처럼 웃기지만, 그 웃음 속에는 현실의 씁쓸함이 녹아 있다.
요괴는 경계에 산다
안내 책자에는 '포스트모던 요괴 연대기를 즐기는 방법'이 적혀 있었는데 그중에 눈에 띄는 몇 가지가 있어 즐겨보기로 했다.
- '이건 뭐지?' 란 질문을 멈추지 마세요. (이건 로리가 계속한 말이다.)
- 무서움보다 '이색함'에 주목하세요. (무서운 건 없고 귀엽고 익살스러웠다.)
- 전시 공간을 '무대'처럼 걸으세요. (로리가 놀이터에서 요괴 친구들과 노는 마음인 듯했다.)
- '경계'에 주목하세요.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가상, 전통과 현대, 웃음과 공포. 요괴는 그 사이에 존재합니다. (작가들이 다양한 방면의 전공자들 이어서일까, 그 특징이 작품에 나타난 듯하다.)
요괴는 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두려움과 익숙함 사이를 넘나드는 존재다. 그래서 이 전시는 관람객이 해석을 완성하는 공간이 되는 듯했다. 관람자가 불편함을 느낄 때, 그 감정이 곧 해석의 출발점이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정다혜의 '그림자 요괴'
정다혜 작가는 '저승사자' '처녀귀신' 등 한국 민화나 신화 속의 캐릭터를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그중에 '그림자 요괴'가 눈길을 끌었다. '그림자요괴'는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존재다. 저승사자를 보좌하는 요괴이기도 하다. '어둠 속을 지키는 수호요괴'를 상상력으로 구현한 캐릭터라고 하는데 작은 몸집, 장난스러운 눈빛 속에 어딘가 슬픔과 충성이 공존했다.
그림자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나 결코 잡히지 않는다.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존재로 인간의 내면 속 두려움과 의식의 그림자를 형상화했다. 그게 어쩌면 '요괴'이자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관람을 마치며― 나 또한 요괴였다
2층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로리는 그 안에서 걷고 뛰고 요괴의 집에 놀러 온 친구처럼 신나 하며 '이건 뭐지? 를 남발했다. 큐알코드를 찍어 작품 해설을 읽어주면 또, '그건 뭔데?'를 연신 날렸다. 나에겐 로리가 요괴였다.
전시장을 나서며 로비에 다시 섰다. 거울 속 눈이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섰다. 그리고 로리를 안았다.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로리와 나.
요괴는 멀리 있지 않았다. 거울 속, 그림자 속, 가방 속, 그리고 내 마음속에 있었다.
포스트모던 요괴 연대기는 인간과 세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묻는다.
"당신은 어떤 요괴와 함께 살고 있습니까?"
물론, 나는 로리라는 말 많은 요괴와 살고 있다.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우면서도 묘하게 떨렸다. 도서관에서 책 대신 마주한 것은 책 보다 더 깊은 이야기, 내 안의 요괴를 바라보는 것.
전시 정보
전시명: 포스트모던 요괴 연대기
기간: 2025년 10월 28일 ~ 12월 7일
장소: 경기도 화성시 향남복합문화도서관 갤러리
주최: 화성시문화재단·플랫폼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