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 마시기
계절이 바뀌면서 감기에 자주 걸리는 로리를 위해 배도라지 차를 끓였다.
당연히 뜨거운 걸 못 마시니 찬물을 섞어서 적당히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로리야. 물을 자주 마셔야 하니까 따뜻한 물 마셔보자" 하고 로리의 텀블러에 담아주었다.
"할머니! 뜨거울 것 같아. 아주 아주 차갑게 해 줘요"
"안 뜨거워 그냥 따뜻해, 따뜻하게 마셔야 해." 하고 달랬다. 아이는 의심을 한다.
아무려면 뜨거운 걸 저한테 주었을까 봐. 텀블러를 들었다 놓았다 들었다 놓았다 한다.
"로리야, 안 뜨겁다니까~ 그냥 따뜻해, 차갑지만 않을 뿐이야. 할머니를 믿고 그냥 꿀꺽, 한번 마셔봐"
그러자. 로리는
"알았어 한번 용기 내볼게" 하며. 입을 살짝 갖다 댄다. 그리고 드디어 한 모금 꼴깍 마신다.
"안 뜨겁지?"하고 묻자
"네, 혜헤" 하며 웃는다.
나는 아이가 용기를 내본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물 한 모금 마시는데 용기를 내야 하는구나.
따뜻한 물 마시는 것도 아이에겐 아주 큰 일이었나 보다.
할머니를 믿고 한번 마셔보라는 말에 아이는 용기를 냈던 것이다.
"할머니! 따뜻해 좋아, 그렇지만 다음엔 아주 아주 차갑게 해서 주세요~"
"응, 다음엔 아주 아주 차갑게 해 줄게. 오늘은 이거 마시고 감기 뚝 떨어져야지."
나는 로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로리는 텀블러를 다시 들고는, 아까와는 다르게 망설임 없이 이번에는 두 모금을 연달아 홀짝였다.
"할머니, 근데 따뜻한 게 차가운 거보다 감기에 더 좋은 거야?" 로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응, 따뜻한 물이 목도 부드럽게 해 주고 몸도 따뜻하게 해 줘서 감기 낫는 데 더 도움이 된대."
"흐음... 그럼 다음에 또 감기 걸리면 (로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는 아주 차가운 거 말고, 조금만 따뜻하게 해 줘."
로리의 그 진지한 표정에 나는 또다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아이가, 이제는 따뜻함의 정도를 협상하고 있다니!
익숙지 않은 것에 도전해보고 난 후, 깨달음을 얻은 로리는 따뜻한 물에 대한 약간의 '면역'이 생긴 것 같다.
"그래, 우리 로리 다음엔 조금만 따뜻하게,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맞춰줄게. 이제 감기 다 나을 때까지 자주 마시자."
로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텀블러에 얼굴을 파묻고 또다시 배도라지 차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작은 용기가, 건강을 위한 달콤한 습관으로 젖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