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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서 할게

도와주지 말라니깐?

by 혜솔

"힐머니~ 사과에는 비타민이 많아? 비타민은 우리 몸을 좋게 해주는 거야?"

사과가 먹고 싶다는 말에 사과 하나를 씻었다.

"나는 껍질도 먹을 수 있어요~"

사과 하나를 깎아서 자른 다음 접시에 놓아주었다.

깨끗이 씻었지만 껍질을 벗긴 부분도 있고 껍질째 자른 부분도 있었다.


"할머니 깎지 말라니까? 나는 껍질째 잘 먹는다고요~"

"껍질이 좀 거칠고 지저분한 곳만 깎았어. 빨갛고 예쁜 데는 그대로 두었어, 자 여기 봐"

"그냥 주면 내가 알아서 먹을 텐데..." 울상이다.

요즘 들어 부쩍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알아서 하긴 뭘 그렇게 알아서 한다고

말끝마다 내가 알아서 할게, 라니 참 날이 갈수록 별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집에 가기 전에 양치를 한다. 닦아주려 하면 "내가 알아서 할게" 하고는 나가라고 한다.

뒤로 물러나 지켜보고 있자니, 물컵에 물을 받아 뿌리며 물장난을 하고 있다.

잘도 알아서 하는군! 화가 나서 칫솔을 빼앗아 닦아주려 하자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할머니~ " 하며 운다.

시간 끌기다. 그렇다고 안 갈 것도 아닌데...


놀이방에 장난감 자동차가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화요일은 정리하는 날로 약속을 했으니

장난감통에 담아놓고 청소를 하려 하자 달려온다.

"여기도 내가 알아서 할게~ 할머니 도와주지 마!"

그리고는 앉아서 부릉부릉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로리가 부쩍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한다는 건, 할머니 곁에서 안전함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징표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사랑받는 아이는 도전하고, 도전하는 아이는 조금 더 크게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한 발 물러서서 인내와 신뢰로 아이를 바라봐야 하는데 시간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된다.

로리는 지금 '자기 의지'를 표현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인정받고 싶은 열망도, 통제권을 갖고 싶은 마음도

성숙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래, 네가 해볼래?

할머니는 여기 있을게.

필요하면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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