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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20. 2016

소통의 부담 덜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시작하기 2주 전에 네덜란드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진행한 수업들, 프로젝트들은 내가 이 곳에 와 적응해온 시간들과 겹쳐 있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도, 그 다음도. 결과물 자체보다는 각각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성장했는지 그 과정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곳에서 디자인을 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프로젝트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대해 전보다 더 주목하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물론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얘기하고 함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발전시켜 나가고.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꼭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나는 앞에 나서서 목소리 크게 얘기하는 성격은 못된다. 하지만 신중하고 조곤조곤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또 한국에 있을 때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아직 미숙할 수 있었고 경험이 없어 한발 뒤에 물러나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또, 나이뿐 아니라 학교나 학과, 성별.. 내가 가진 배경들이 나의 말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설명해주기에. 그 틀 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몰라준다. 학교 내 사람들도 길가는 행인들도 구태여 시간을 내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일 이유도 없고. 나의 단점들을 너그럽게 포용해줄 이유도 없었다. 또한, 나 스스로도 인터랙션을 디자인한다고 하면서 사람들과의 인터랙션에서 뒷걸음칠 칠 수는 없었다. 


사람의 성격을 무조건 외향적, 내향적으로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내가 느낀 점들이 내향적인 성격 탓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점점 나의 성향에서 비롯된 단점들이 크게만 보였던 것 같다. 나는 쉽게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 잘 모르는 사람과 가벼운 대화를 이어나가며 어색함을 푸는 것도 잘 하지 못한다. 또한 임기응변식으로 나의 생각을 빠른 시간 내에 얘기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내가 잘 아는 주제여도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정리해야 말을 잘할 수 있다. 특히 영어로 소통을 하기 시작하니 이런 점들이 더욱 심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단점들이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내 마음의 부담도 더욱 커지게 되었다. 스튜디오 안의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디스커션을 할 때에도 나는 금세 바닥이 보이는 느낌이 이었다. 내가 그동안 한 결과물도 호소력이 없어 보였고 어떤 피드백을 받았을 때 자신 있게 받아치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도움되는 피드백을 많이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또 인터랙션 프로토타이핑이라고 해서 아이디어 단계의 인터랙션을 간단하게 그 부분만 테스팅하는 방법론이 있다. 이 경우에도 소통의 힘이 컸다.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목적과 테스트하려는 부분을 단시간에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려던 말이 잘 전달되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인터뷰를 할 때에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말을 해서 긴장감을 풀어야 할지 당황하곤 했다.


그러던 중에 Creative facilitation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말 그대로 Facilitator, 촉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연습을 하는 수업이다. Facilitator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주로 어떤 미팅이나 디스커션에서 더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게 진행하는 역할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특히 디자이너로 그룹 인터뷰나 크리에이티브 세션 등을 할 때 최선을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떻게 계획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배우는 수업이다. 여기서도 몇몇 학생들은 타고난 언변을 자랑했다. 앞에 나와 여유롭게 농담을 하고 참가자들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유도해 내고. 나도 그런 스타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자꾸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수업 교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실 Facilitator는 내성적인 사람이 더 적격이다라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사람들의 성향을 관찰하고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들이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게 여러 모로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역할에는 내성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이 부분이 내게 많이 위로가 되었다. 


내향적이고 외향적이고를 떠나서 나는 본래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 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는 것을 즐겨한다. 내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 속에서 좀 더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내고 디자인으로 그를 유도하는 것. 나의 전공으로 디자인을 선택한 것 또한 이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나는 내 단점들이 부각되어 보이자 그 단점들이 나의 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더 잘하고자 하는 것뿐인데.. 


마음의 부담을 줄이기로 했던 것 같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사람들과 소통하면 된다. 여유 있어 보이진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솔되게 전달하고자 했다. 목소리가 크진 않지만 다른 부분을 보완하고자 애썼다. 그게 통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기대하는 바가 다들 다르니 어쩔 수 없다. 미팅을 할 때에도 머릿속이 빨리 돌아가진 않지만 그래, 무슨 말이라도 하자. 실없는 소리 좀 하면 어때. 가벼운 말도 할 수 있지..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나아. 그냥 마음을 가볍게, 가볍게.


그리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아직도 슈퍼 외향적인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다. 모르면 물어본다. 말하다가도 정리가 안 되면 양해를 구하고 처음부터 다시 얘기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기도 했다. 저렇게 분위기를 푸는구나, 이런 말을 하면 좋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 학기에 하고 있는 팀 프로젝트에서 워크숍을 하게 되어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동안 네덜란드 학생들은 모두 목소리가 크고 큰 발표에도 두려움이 없어 보여서 나와는 본질 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워크숍 전날 팀원들의 초긴장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 팀원들을 붙잡고 긴장할 것 없어, 우리 즐기면서 하자고 격려하는 나를 돌아보니 그래도 많이 발전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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