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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Aug 17. 2017

스치는 사람을 잡을 줄 알아야 인연이 된다.

놓치면 그대로 흘러갈 테니까.





산토리니. 그 청량한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렘을 주는 곳. 왠지 온통 하얗고, 파랗고, 투명할 것만 같은 그 섬에서 나는 그 사람을 만났다. 아테네에서 출발한 페리가 9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달려 부두에 정박하는 그 찰나에 들이마신 공기가 내가 그토록 원하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줬을 때 괜스레 먹먹해 눈물까지 맺혔던 내 로망의 섬에서 말이다. 그 사람은 멍하니 저 바다 건너 수평선을 바라보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꽤나 신기했을 테지. 평생 만나보지 못해도 이상할 거 없는 나라의 여자가 혼자 머무르기엔 섬이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은 호기심이 꽤나 강했다. 끊임없이 말을 거는 게 사실 좀 귀찮았을 정도니까. 아테네에 살지만 생업을 위해 산토리니에 머물던 그 사람, 체격이 큰 상대는 싫다던 그 사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그 사람, 시끄러운 것이 싫다던 그 사람, 그래서인지 말투도 꽤나 조곤조곤했던 그 사람. 술을 즐기지만 산토리니 현지 맥주는 아직 마셔보지 않았다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앉은자리에서 일어나던 그 사람의 뒷모습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 Copyright 2014. 동경(insta@id1992) all rights reserved. [그리스/산토리니]




야마스. 발음이 참 귀엽다. 그리스어로 ‘건배’라는 뜻이라나. 서로의 맥주 캔이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내던 찰나 그 사람은 그 순간이 꽤나 마음에 든 듯 함께 별을 보지 않겠느냐 물었다. 물론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 섬에서 나를 기다려줄 사람은 없었으니까. 나는 그 사람이 와인을 사러 간 사이 추천받은 음식으로 배를 채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한 손에 약속한 와인 한 병을 들고 나타났다. 급히 뛰어온 듯 숨을 헐떡여가며 내 앞에 의자를 빼내어 앉을 때 내쉰 그 차가운 공기에는 혹여나 내가 기다릴까 하는 마음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숨이 온전히 돌아오기도 전에 그 사람은 나를 이끌어 우리가 처음 만난 언덕으로 다시 향했다. 진한 분홍빛이던 노을은 어느새 사라졌고 청량하던 마을에도 어둠이 찾은 후였다.



뭐랄까. 정말 당연한 건데 별이 유독 멀리 있는 것만 같아서 서운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여간 그런 기분에 잠시 마음이 소란하던 찰나 그 사람은 내 마음을 단숨에 알아챈 듯 내 손을 이끌어 근처 상점의 2층 테라스로 향했다. 비수기인 탓인지 굳게 닫힌 상점의 문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그사람은 말했다.



“조용히만 하면 괜찮아. 손 이리 줘. 조심하고.”



있잖아. 사실은 나 아직까지도 와인 맛을 잘 몰라. 그리고 겁도 정말 많고. 그런데 생전 처음 만난 당신 손을 잡은 건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해. 나는 이제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당신과 같은 사람을 붙잡을 테지.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흘러갈 테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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