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살 것 같다.'
집에 도착한 뒤 짐을 풀고 샤워를 하니 피로가 살짝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가습기의 물을 채우고 난방도 켰다. 이 얼마나 아늑한 공간인가.
여행지에선 물이나 공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고장이 나고 만다. 이번엔 환절기인 데다 공기 안 좋은 곳에 오래 머문 탓인지 때 이른 감기가 찾아왔다. 사흘 내내 기침하느라 잠을 깊이 못 잔 건 둘째 치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여행의 피로도 풀고 여운을 즐기고 싶어서 오전 늦게 출근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미뤄둔 빨래도 했다. 카페쇼에서 구입한 커피들을 보고 있으니 뒤늦게 뿌듯함에 밀려왔다.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커피맛은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새삼 타고난 미각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침을 간단하게 챙겨 먹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지금 사는 동네는 남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파밭이던 곳을 개발해서 상가주택이 들어섰으며, 주위엔 아직 농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공기가 좋고 한적한 분위기를 덤으로 느낄 수 있다.
타지인에겐 광안리나 해운대 같은 이미지만 기억에 남아있겠지만, 부산에서 오래 살아온 입장에선 다른 명소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낙동강을 끼고 대자연을 품은 강서구가 아닐까.
한때는 그토록 벗어나려고 애쓴 곳인데, 이렇게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