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과와 차이가 있는 경험
돈을 벌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가능하면 지금 당장.
1995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실업계로 방향을 꺾었다.
서울 강동에 있는 삼하나공업고등학교 디자인과.
이름부터 벌써 뭐 하나 뚝딱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학교였다.
내가 그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빨리 돈을 벌기 위해서.
그나마 잘하는 게 그림이었고, 그중에서도 디자인은 ‘돈이 되는 미술’ 같아 보였다.
미술이 아니라 기술 같고, 감성이 아니라 전략 같았다.
가난한 집안의 사내에게는 딱 그만큼의 실용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입학 하자마자 새벽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250부를 돌리면 월 20만 원.
1시간 반 정도 걸렸으니, 시급 계산하면 4천 원 조금 넘는 돈이었다.
고등학생 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입이었다.
친구들보다 나는 항상 지갑이 두툼했지만,
그 안에 든 건 자유가 아니라 의무였다.
몸은 자연히 건강해졌다.
매일 아침 뛰다시피 달렸으니 폐활량이 쭉쭉 늘었다.
그리고 하루가 길어졌다.
실업계 학교 수업은 느슨했고, 공부하는 친구들은 손에 꼽았다.
그 안에서 수업 잘 듣고 교과서만 제대로 공부해도 성적은 쑥쑥 올라갔다.
국사는 거의 외우다시피 했고, 나는 내신은 1등급.
전교 1등, 2등도 해봤다.
“쟤는 머리가 좋은가 봐.”
아니, 나는 그냥 교과서를 다 읽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데, 그땐 신기했다.
책을 읽으면 성적이 오르네?
공부가 쌓이면 ‘잘한다’는 소리를 듣네?
세상이 이런 구조라면, 나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이 와서 물었다.
“너 몇 개 틀렸냐?”
“아 그 문제 너 뭐라고 썼어?”
그 순간, 내가 주인공인 교실이 있었다.
어릴 적엔 나와 상관없는 풍경이었는데,
지금은 그 풍경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디자인과라 그런가, 선생님들도 독특했다.
만화에서 나온 왕자님 같은 선생님도 있었고, 정신 나간 것 같은 선생님도 있었고,
정말로 아이 같은 선생님도 있었다.
그 특이한 환경 속 틈에서 나는 디자인 공부를 했다.
실업계 고등학교 특성상 이론보다는 실기 위주 라 손이 바빴고, 머리는 천천히 달궈졌다.
그림은 내가 처음으로
‘노력하면 늘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운 분야였다.
친구 따라 감각만으로 만 시작했지만, 이제 손으로, 땀을 섞어가며 익혀야 갔다.
그림은 사실 그림보다 엉덩이가 더 중요하다.
오래 앉아 있는 자가, 결국 잘 그린다.
어느 날,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나는 결정했다. 앞으로는 변하겠다고.”
그리고 그 밑에, 이런 다짐도.
“나에게 엄격, 남에게 관대. 소극적인 나에서 호탕한 나로.”
그 시절의 나는 초라했지만
누구보다 단단했다.
그 누구도 내게 주인공이 될 자리를 주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새벽 신문을 돌리며 주인공이 될 나만의 무대를 닦고 있었다.
(다음 편 : 4화 나도 되는구나.)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