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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빵 만드는 디자이너

빵 냄새나는 디자이너

by 마음을 잇는 오쌤

나는 ‘서울공업대학교 산업디자인과’라는,

이름부터 묵직한 곳에 입학했다.
버스 창문에 이슬이 맺히던 그날 아침,
아무 기대도 없이 세워둔 목표를 결국 이뤘다.
그때의 나로선 도달 가능한 가장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입학식 날, 혼자 속으로 선언했다.




“이제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 준(準) 디자이너다.”


입학식이 끝난 뒤,

나는 혼자 운동장을 걸으며 그렇게 다짐했다.

봄바람은 차가웠고, 내 마음은 조금 들떠 있었다.


‘이제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그런데 며칠 뒤 새벽 4시,

숙성된 밀가루를 오븐에 넣다. 손을 데이던 순간,

그 생각은 조금 수정됐다.



“나는… 지금 구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 시절 나는 학비를 모으기 위해

새벽엔 빵을 굽고, 낮엔 수업을 듣고, 밤엔 과제를 했다.
하루 세 번의 삶을 사는 기분이었다.


졸린 눈으로 강의실에 들어가면,

여학생들이 수줍게 다가와 말했다.



“오쌤, 너한테서 좋은 냄새 나 ^^”


그건 샤넬 No.5가 아니고,

버터 가득한 크로와상 냄새였어.

그 후로 난 빵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사실 난 대학만 가면 드라마처럼 풍요로워질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처럼, 노력하면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동기들과 어울리다 보면 격차는 금세 드러났다.


‘걔 네 집에 생수기가 있대!’


그 시절엔 대부분 델몬트 오렌지주스 병에

보리차를 끓여 먹었다.

가정에서 물을 ‘사 먹는’ 건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수기가 있다니 — 그건 거의 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빨리 졸업하고 싶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진짜 디자이너가 돼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대학은 그저 통과의례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운전면허를 땄다고 바로 운전을 잘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디자인도 마찬가지였다.


학점보다 중요한 건 ‘현장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디자이너 선언’을 했다.
수업과 별개로 디자인 잡지를 파고들고,
성공한 선배들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선배, 그 제품은 왜 그렇게 디자인하셨어요?”

“스케치할 땐 어떤 펜 써요?”

“선배님 만의 디자인 철학은요?”


지금 생각하면 좀 민폐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배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야, 걔 좀 부담스러워…

벌써부터 디자이너인 것처럼 행동하고,

새벽에 아르바이트한다고 술도 안 먹고,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잖아,

그 동아리, 사이비 아니냐?”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바 핑계로 술을 안 먹은 건 사실이지만,

내가 속한 동아리가 ‘예수전도단’이라는 이유로

사이비 취급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이름 끝의 ‘전도단’은 좀 의심스러워 보이긴 했다.)


선배들에게 자꾸 말을 걸고,

디자인 가르쳐달라며 따라다니니까


“쟤 혹시 전도하려는 거 아냐?”라는 오해가 생긴 거다.


억울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보다 더 나를 잘 설명한 별명도 없었다.


나는 믿고 싶은 걸 맹신했고, 주장했다.

그 열정으로 누군가를 흔들고 싶었다.

단지, 아직은 설명할 언어가 부족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선배들은 내 진심을 알아줬다.
‘사이비’란 별명도 어느새


“그 녀석, 참 웃겼지” 정도로 바뀌었다.








그 시절의 나는
디자인도, 인간관계도, 미래도 모두 ‘반죽 중’이었다.

매일 새벽같이 구운 빵처럼
나는 나를 부풀리려 애썼다.

때로는 태워먹고, 삐뚤빼뚤한 날도 많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이 절정에 닿아 완성될 무렵,

등기 우편이 도착했다.

왜 하필 지금…




그건 입영통지서였다.



(다음 편 : 8화 훈련병의 그림일기)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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