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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낯선 곳에, 나

익숙해지는 법

by 마음을 잇는 오쌤

논산 훈련소 수료식을 마치고

우리는 열차를 탔다.


누군가는 올라가는 방향에 환호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떨궜다.

그날, 나는

그 ‘올라간다’는 방향이

내 인생 어디쯤에 가 닿을지 몰랐다.

다만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열차가 또 멈췄다.

남은 인원들이 모두 내렸다.



플랫폼 밖에는

10여 대의 육공 트럭이 줄지어 서 있었다.


“트럭이 이렇게 많이…?”


이상했지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군인들에 이끌려 마치 소몰이하듯

트럭에 올라탔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엉덩이는 쿵쿵,

먼지와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렇게 나는,

경기도 어딘가 산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곳은 제3야전 수송교육단.

나는 바로 자대배치가 아닌,

‘후반기 교육’ 대상자였다.


논산 시절, 조교가 던진 한마디 질문이 떠올랐다.


“너 운전면허 있어?”

“네 그렇습니다!!”


그 대답 하나로

내 군생활 2년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반기 교육은 낯설었다.
훈련소와는 또 다른 공기.


낡은 막사, 기름 냄새,
스패너와 렌치가 부딪히는 금속 소리.


연필을 잡던 손은

이제 스패너를 잡았다.


디자인을 공부하던 나는
트럭 엔진 밑에 몸을 반쯤 집어넣고 있었다.


익숙해지는 속도는 무서웠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익숙하다’는 말은
어쩌면 덜 외롭다는 뜻일 뿐이었다.


후반기 교육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논산보다 덜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더 피곤했다.








퇴소식이 끝나고,

나는 다시 열차에 올랐다.


이제는 진짜 자대.

2년을 보낼 보금자리로 향하는 길.


열차가 잠시 후진했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직감했다.


“아… 전방이구나”





열차에서 내려 다시 육공 트럭에 올랐다.

비포장도로가 이어지고,

나와 함께 왔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흩어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좁은 길로 들어설 때,


“왕! 왕!”


어딘가에서 커다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대형견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었다.

“드-앙! 겨-얼!”

이 부대의 경례 구호였다.
공기를 머금어야 큰소리가 난다고 했다.


어리 둥절 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어느 작은 직할대의 수송부,

그곳이 내 전방이었다.







신병 신고식은 별거 아니었다.


말년 병장이 이등병인 척 옆에 서서
“야, 나도 오늘 왔다”

속는 척도 안 했다.
그 덕에 재미없는 놈으로 찍혔다.


군대는 참 단순했다.


시설이 낙후된 이곳은

훈련소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 말은 곧,

내가 뭘 하든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처음 받은 임무는 탄약고 근무였다.


한밤중, 총을 들고 서 있는 그 시간.

바람에 풀잎이 스치는 소리와 별빛.


세상과 단절된 듯한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거 진짜 내가 살던 세계 맞나… 너무 다르다.”


그 어색함이,

그리움보다 먼저 왔다.







“기상!! 기상!!
부대 전원 전투복으로 환복 후
연병장 5분 내 집합!!!”


“뭐지… 전쟁 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낯선 세상에서
조금씩,

살아남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그게,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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