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낮에는 군인이었다.
철모 쓰고 군장 매고, 얼차려 받고, 땀에 절은 채 걸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나는 다시 디자이너였다.
“취침 소등 하겠습니다!”
불침번의 외침과 함께 불이 꺼지면
나는 연필과 스케치북을 들고 조용히 연등 장소로 향했다.
이미 연등 신청서를 냈고,
수송부 행정이니 뭐니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사람 없는 자리에서
조용히, 내 그림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하라는 총검술은 안 하고…’
‘저 새끼는 연등이랍시고 맨날 컴퓨터 앞이네.’
그런 뒷말?
다 들렸다.
근데 아무 상관없었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나를 그리는 유일한 순간이었으니까.
거울도 없고, 그냥 종이 한 장 놓고
‘군대 안의 나’를 그렸다.
처음엔 선이 흔들리고,
손끝도 꽉 얼어붙었었는데
며칠, 몇 주를 계속 그리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손이 말을 듣기 시작했다.
누구는 잠자고, 누구는 PX 줄 서는 시간에
나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디자이너다.
이건 일기장도, 군생활 보고서도 아니다.
이건 나를 다시 붙잡는 연필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계급도, 군기도, 명령도
내 위에 없었다.
가끔 선임들이 와서 슬쩍 구경했다
“야, 이거 네가 그린 거야?”
“오오~ 야 얘 봐라. 이거 나중에 써먹자.”
칭찬인지, 농담인지, 장난인지…
애매한 말들이었지만
그게 이상하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때 알았다.
군대라는 거대한 회색 속에서
날 지우지 않는 유일한 색은
내 손끝에서 나오는 선 하나였다는 걸.
그래서 결국,
그곳에서 나는 ‘그림 그리는 놈’이 되었다.
그 이름 하나라도 없었다면,
아마 이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