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2학기 학급회장 선거를 앞두고 1학기 때 낙선을 맛본 유는 필승을 다짐했다.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봤다고, 어떤 공약을 할지 고심하고 또 어떤 말을 하면 친구들이 웃어줄지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게 그렇게 두렵다던 유가 스스로 이렇게 도전장을 내밀어 보겠다는데,
낙선을 경험하고도 '또 하면 해볼래요.'라고, 말하는 너의 용기가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실패를 경험하고 난 후 성공은 값진 경험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엄마는 마음 한편에서 '이번에는 돼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물꼬를 트자 조금 간절해졌다.
실패만 거듭하면 어른도 자연스레 마음이 작아지는데 아이라고 그렇지 않을 리 없으니까.
녀석이 꿈꾸던 도전의 끝이 '어차피 안될 거였다'는 부정적인 구름이 드리우면 그것을 걷어내는데 꽤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게 두려웠다.
'되면 기쁘고, 안되면 아쉽지만, 다음을 기대할 줄 아는 용기만 지켜지기를 바라면서.'
-엄마 이번에는 삼행시로 해보려고요
-오? 좋은 생각인데.
회장 선거 공약이나 이벤트를 대신해 준다고 하던데, 엄마도 그렇게 해주려는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열 살 네가 경험한 것과 네 생각만으로, 오롯이 스스로 해냈을 때의 기쁨을 완전히 느끼길 바랐기 때문에 엄마는 조언을 아꼈다.
녀석은 좋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는 듯 히죽거리며 물었다.
-엄마 근데 내가 회장이 되면 피자나 치킨을 사겠다고 해도 돼요?
-응 되지. 그게 공약이라면 사야지!?
너와 엄마는 '그건 뇌물 아니냐 했다가 반 전체에 산다면 뇌물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선거법 위반 아닐까'라고 공약을 준비하다가 낄낄거리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골똘히 생각하던 너는 한 줄 한 줄 정성껏 공약을 쓰더니 몇 번을 연습했다.
그리고 "완벽!"이라며 쌩긋 웃어 보였다.
엄마가 보기에 완벽은 아니지만 네 노력은 아주 깜찍하고 귀여웠다. '귀여운 놈….'
터덜터덜 문을 열고 들어오던 유가 눈이 마주치자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마치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엄마는 가만히 너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털썩 가방을 내려놓고 색종이를 손으로 휘젓듯 펼쳐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결과를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너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엄마는 순간 위로의 말을 하는 게 맞을까, 모르는 척 묻지 않는 것이 나을지 생각하다가 엄마는 열 살 친구처럼 오늘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혹시나 엄마를 놀라게 할 요량으로 깜짝 이벤트는 아닐까, 엄마는 헛된 기대를 하며 물었다.
-회장 누가 됐어?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다른 친구가…."
-우리 아들 아쉽겠다. 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언제나 도전이 젤 멋진 거 알지?
도전한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은 엄청나게 달라. 엄마는 도전한 네가 엄청나게 자랑스럽고 멋져!
엄마가 아무리 추켜세워도 너는 별다른 대꾸 없이 주욱 늘어난 치즈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종이접기만 했다. 너는 혼자 마음을 추슬렀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의 결과에 대해 "한방이 없었어"라고 했다.
- 응? 한방?
-응. 내가 젤 처음으로 공약했어. 나는 진짜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말했거든. 나는 내가 남아서 교실 뒷정리를 해보니까 뿌듯하고 좋아서 교실을 깨끗하게 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어. 소외되는 친구가 없게 모두가 즐겁게 지낼 수 있게 하고…. 막 공약을 말했는데.근데 애들이 탕후루 챌린지도 하고, 춤도 추고 가사도 바꿔 부르고 했어. 나는 이런 한방이 부족했다고 생각해.
비록 패배했지만 너는 또 이렇게 성장했다.
속상했지만, 혼자서 패배의 이유를 되짚어봤고 나름의 이유를 분석적으로 찾아냈다.
낙심하고 계속해서 속상한 모습만 보였다면, 공약 몇 줄쯤은 대신 써주고 외워보라고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을, 춤추고 노래도 불러야 인기가 있다고 조언해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할 뻔했다.
'고맙다. 너의 단단함이.'
엄마는 네가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 천천히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