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니 Oct 15. 2024

간절기가 왔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계절이 있다.



2024년, 올해는 모든 계절이 제법 뚜렷하고 길게 느껴진다.      



작년의 첫 직장에서의 퇴사와 올해의 이직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대중매체에서 보는 퇴직후 홀가분해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달리, 끝까지 고민이 많았고 힘들었다. 퇴사 후 떠날 해외여행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그 이후의 이직 준비가 걱정되어 잠을 못 이루었고, 두 번째 직장에서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할 때에는 좋은 조건에 직장을 옮기는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적응할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원래 이렇게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나.

 


사람이 어려워서 그렇다. 말못하는 짐승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고, 아주 작은 아이들을 보아도 저 자그마한 머리속에 얼마나 귀엽고 재미난 생각이 많을지 궁금하다. 혹여나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상처받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고유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성인을 상대하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저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장난의 정도가 다르고 선이 명확한 사람도 많으니까. 모든 사람을 다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은 알면서도... 환경이 크게 변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항상 힘들었다. 특히 상처가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질문도 건네기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술의 힘을 빌려 친해진다.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예민함이 무뎌져 바보같이 웃게된다.





기나긴 겨울 내 봄을 기다렸더니 조금만 따듯해져도 봄이 오려나봐! 설레발을 쳤다. 매일 집앞에 있는 나무를 지나며, 새로운 잎이 올라오는지 꽃몽우리가 올라오는지 유심히 살펴봤다. 보통 개나리가 피고, 목련 꽃이 피고 질때 쯤 벚꽃이 피고, 한참 지나서 향이 짙은 아카시아 꽃이 피고, 라일락이 피는데... 올해는 파티가 벌어진 듯 모든 꽃이 비슷한 시기에 개화했었다. 한참을 봄을 기다리고, 봄을 만끽하다보니 항상 짧게만 느껴져 아쉬웠던 봄이 참 길었다.



그리고 여름, 봄이 길었던 것에 비추어보면 사실 여름은 그다지 길었던 것이 아닐 수 있다. 추석까지 더웠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길었던 건가, 아무튼 올해 여름은 아주 덥지 않았고 장마도 길지 않고 산뜻했다. 다만 살이 좀 쪄서 몸이 무거웠다. 그런데 나는 살때문에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았고 살을 뺄 의지가 없었다. 운동을 하다보니 배가 고파서 많이 먹었고, 살크업을 하는건지 벌크업을 하는건지 툭 튀어나온 뱃살이 괜히 웃기기도 했다. 배가 나온 아기나 캐릭터는 귀엽던데 나는 왜 귀여울 수 없을까. 살이쪘다며 나무라는 부모님에게 이건 살이 아니라 근육이다, 붓기다라고 주장하며 야무지게 먹었더니 붓기고 근육이고 모르겠으니 다음에 만날때까지 무조건 3키로 빼고 오라고 하셨다. (한 귀로 흘렸지만 그뒤로 조절중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름 모를 계절을 좋아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간절기는 싱그럽고 활기가 넘친다. 괜히 간지럽고 외로울 때도 있다. 꿈결같은 로맨스는 허상으로 끝날 때가 많으니. 그래도 그 찰나의 계절과 냄새가 좋다. 힘들고 아팠던 마음마저 시간이 흐르면 거짓말처럼 그리운 추억이 되어버린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간절기는 창백하고 무겁다. 단풍도 선선한 날씨도 잠시뿐 가장 싫어하고 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쓸쓸하고 우울해서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 산책을 하다 어쩌다 맡은 비맞은 낙엽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떤 날은 카페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걸까.



서른살을 앞두고 남겨진 가을과 겨울, 남은 계절에 속해 차곡차곡 예쁜 추억을 쌓고 기억해야지.












작가의 이전글 서른 살에 읽는 논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