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우리 애가 이런 것도 해!
얼마전에 출간한 첫 책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첫 온라인 북토크에서 많은 질문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 하나는 내 책에 등장하는 아들의 발달전문 소아과 전문의에 대한 질문이었다. 독자들에게 의사와 나와의 대화는 충격이었던 듯하다. 가끔 이민자로 살면 호주에서는 보편이 한국에서는 충격이고, 한국에서의 보편이 호주에서는 충격이 된다. 두 나라를 경험하는 이민자들에게는 일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운이 좀 좋았다. 여러면에서 그렇다.
첫째로 좋은 전문의를 만났다. 호주도 사람사는 곳이고, 더군다나 언어와 문화와 사회적 규범등이 모두 다른 전세계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사람 사는 곳이면 의례 그렇듯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호주에 살면 의사들도 전세계 출신을 만난다. 아들의 전문의는 인도 억양이 강한 분이다. 그리고 이 분은 내 책에 등장하는 자녀가 모두 자폐이고 본인도 그 과정에서 자폐 진단을 받은 아들의 초등학교 때 교사가 추천해 준 의사다.
다시 말하면 자폐 당사자인 엄마가 본인의 자폐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의사란 뜻이니, 보통 이상 수준의 의사여야 한다는 뜻이다. 자폐인들은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경우가 많고, 본인과 가족들의 자폐를 가족의 문화로 그리고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당사자가 선택한 의사는 신뢰해도 된다는 뜻이다.
“아이의 미래에 제한을 두지 마세요. 보통 부모들이 진단을 주면 애의 "무능이나 불능”에 대해서 골몰해요. 애가 지능이 높은 분야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세요.”
닥터 N이 말했다. 좋은 의사를 만난 게 행운이라면, 아들의 지능이 평균 이상인 점도 행운이었다. 만약 내가 한국에 살고 타이거 엄마였다면 아들을 영재반에 넣고자 극성인 엄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만 해도 후덜덜 하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아들의 실수나 부족한 점들만 보였다. 주변 아이들과도 비교가 되고 다양한 책들이 부족한 점과 어려운 점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닥터 N의 예견처럼 그 부분들을 어떻게 다 메꾸어 주나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피곤했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이미 신경발달적으로 다른 내 아이를 신경 전형인 아이들과는 똑같은 방식으로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진단은 어쩌면 이런 면에서 도움이 된다. 안되는 일에 더 이상 진빼지 않기!
신경전형인 아이들에게 맞는 기준과 기대를 내려 놓자 내 불안도 그리고 아들의 불안도 점차 내려갔다. 대신 명랑한 아들과 즐겁게 사는 일에 더 골몰하기로 했다. 다행히 호주의 학교는 (비장애 아동을 키웠다면 걱정이 될 만큼) 경쟁도 없고, 입시의 경쟁도 심하지 않고, 학교가 입시를 준비하는 곳이란 개념도 낮고, 사교육도 흥행하지 않으니(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주변에서 받는 압박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면에서 호주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점도 행운이었다.
아들이 구워준 연어 스테이크. 요리좋하하는 엄마보다 더 잘 구워내는 능력자
“엄마, 왜 내가 장애야?”
한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진지하게 반문했다. 아마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아들이 내 아들이란 점일 게다. 본인이 누구인지,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는 점이 많이 보이는데, 왜 자기에게 ADHD 진단명이 내려졌는지 등이 궁금해졌을 게다. 아들도 처음에 내가 그랬듯, 아마도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장애란 진단명은 "모든면"에서의 불능과 무능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네가 ADHD 라는 말이 네가 모든 면에서 신경전형인 애들보다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야. ADHD 라는 기준 자체가 비ADHD아이들하고 다른 너의 특징을 설명해주기 위해 사용된 진단명인데, 그래야 그 어려운 부분들을 엄마나 선생님들이 이해하기 쉽고 지원하기 쉽기 때문에 주는 거야.”
나는 주변에 자녀의 자폐나 ADHD 진단을 받는 엄마들에게 조언한다. 이 아이들을 키워낸 선배 부모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성인이 된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고. 발달 장애는 아이가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자란다는 뜻이지 발달이 멈췄다는 뜻이 아니라고. 그 말은 지금의 모습이 미래의 모습이랑 같지 않을 수 있다고.
가끔 오래전 아이의 자폐 진단을 도와줬던 지인들을 만나면 그들의 변화를 보는 일이 즐겁다. 진단을 줄 때만 해도 우리 애는 이것도 못해, 저것도 안돼, 를 입에 달고 살던 엄마들이 지금은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 우리 애가 이런 것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