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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경량 Aug 02. 2024

초경량: 갑진년(甲辰年) 대서(大暑)의 끝에서

사랑과 선풍기


초경량

사랑과 선풍기

선풍기만 보면 가까이 다가가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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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나만의 사랑


안녕하세요 초경량 에디터 김지후입니다. 8월 1주차 뉴스레터로 인사드립니다.


이번 주제는 선풍기입니다. 선풍기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어릴 적 선풍기 앞에서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선풍기 회전 속도에 맞춰 내 목소리가 뚝뚝 끊겨 들리죠. 시원하면서도 몽글몽글한 여름날 기억이랄까요.


“어우 더워.”


요즘의 여름은 선풍기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높은 습도 때문에 힘든 것 같아요. 하지만 선풍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손풍기가 나왔기 때문이죠. 더위를 많이 타는 분들은 선풍기에 대한 나만의 사랑으로 가방 속 손풍기를 뽑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할머니 집에 있는 선풍기가 생각납니다. 무려 50년 가까이 된 선풍기죠. LG의 전신인 금성에서 만든 제품으로 도란스(트랜스/변압기)를 사용해야 쓸 수 있습니다. 이 오래된 선풍기는 진파랑색의 날개를 가지고 있어 더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빈티지한 디자인과 도란스의 조합은 선풍기를 쓸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선풍기 앞에서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던 아이는 훌쩍 커버렸지만 선풍기는 그대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할머니네 선풍기를 쓰면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아 즐겁습니다. 이게 선풍기에 대한 저만의 사랑인 것 같아요.


고개를 연신 돌리며 바람을 보내주는 선풍기는 정이 많이 드는 물건 같습니다. 한번 사면 오래 쓰기도 하니까요. 여러분 집에도 추억이 묻어있는 선풍기가 있지 않으신가요? 이번 여름, 정든 선풍기와 함께 시원한 추억을 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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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 속 선풍기


저는 선풍기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요. 바로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입니다. 홍콩은 더운 지방이죠. 그리고 여름철에 습도도 높고요. 그래서 아비정전 속 배우들의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선풍기가 탈탈탈 거리며 돌아가고 있죠.


아비정전을 보다 보면 내가 다 더워져요. 땀 때문에 윤이 나는 배우들의 얼굴을 통해 습한 날씨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선풍기 한대로 여름을 납니다. 극 중 러브라인인 배우들은 한 침대에 누워 선풍기 바람을 쐬죠.


“에어컨을 좀 틀면 좋겠는데..”


하지만 아비정전은 90년대 영화라 그런지 에어컨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여름에 에어컨을 잘 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은 에어컨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날씨가 더워진 걸까요? 


에어컨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돼버린 현대인. 그래서인지 무더운 홍콩 날씨에도 살을 맞댄 채 선풍기 바람을 쐬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화면으로 느껴지는 더운 날씨, 레트로한 패션과 인테리어, 그리고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기계식 선풍기. 이 조합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며 보는 사람을 매료시킨달까요.


90년대 홍콩영화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감각적인 비주얼도 그 이유 중 하나죠. 하지만 그 시대의 낭만을 담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어릴 적 엄마가 여름날에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하면서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던 것도 낭만이었을까요? 고개를 바삐 돌리는 선풍기를 보며 낭만을 생각하게 되네요. 에어컨을 쉽게 틀 수 있는 지금 선풍기는 우리에게 또다른 낭만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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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계절과 노을



선풍기로 시작하고 홍콩영화 OST로 끝나는 | 라이프스타일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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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여름은 ‘대 손풍기 시대’인 것 같습니다. 여름에 길을 걷다 보면 손풍기를 얼굴에 바짝 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죠. 땡볕 아래 서있는 사람은 맹렬히 돌아가는 작은 손풍기에 의존합니다.


선풍기는 바람을 만들어주는 기계. 우리는 시원한 바람에 열을 식히고 싶어 합니다. 자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좋겠지만 도시에서는 힘들죠. 심지어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시인들에게는 시원한 바람이 간절하죠.


그래서 손풍기를 씁니다. 실내와 달리 밖은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말 더운 날은 손풍기 바람이 시원하지 않습니다. 미지근한 바람이 나와 더 덥게 느껴지기도 하죠. 이럴 때면 시원한 자연의 바람이 생각납니다. 천연 선풍기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며 손풍기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죠.


개인적으로 손풍기는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들고 다니기 너무 귀찮죠. 하지만 너무 더우니 어쩔 수 없습니다. 어느 땐 시원한 거 같다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기계 발열 때문에 이게 선풍기인지 핫팩인지 싶을 때도 있습니다.


바람이 나오는 기계에서 열이 납니다. 모순인 것 같아요. 사실 시원해지려 할수록 더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팽글팽글 돌아가는 선풍기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시원한 바람과 뜨뜻한 선풍기 머리. 한쪽이 시원해지면 한쪽이 더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가끔 덥고 자주 시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8월입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부디 시원한 일주일 되시길!



이번주 뉴스레터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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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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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의 추천곡

Los Indios Tabajaras - Always in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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