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을 다르게 봐야 할 이유
문화의 조작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편견이 심어지는 것은 좀 심하게 말해 가공할 일이다. 이 책은 내가 가진 편견을 뿌리 채 들어냈다. 어린 시절 자주 본 미국 서부 영화. 백인은 정의를 실현하는 ‘선인(善人)’으로 묘사됐고 아파치로 불리는 인디언은 무지하고 폭력적인 ‘악인’으로 그려졌다. 그런 문화에 젖어가면서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에 백인을 선호하고 인디언을 경원시하는 잘못된 사고가 몸에 배었던 것이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북미대륙에서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원주민인 인디언의 삶, 철학 그리고 문화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가면서 인디언들이 남긴 연설문들을 류시화 작가가 엮은 책이다. 백인의 시선이 아니라 인디언의 주체적인 관점에서 백인과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증언하는 기록들로 가득하다. 특히 인디언들이 얼마나 깊이 있는 영성과 공동체성, 감사, 그리고 자연에 대한 사랑을 추구했는지를 그들의 입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물질 문명에 찌든 백인의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인디언들은 ‘소유’라는 개념을 모르는 채 자연을 보호하고 자연에 감사하며 필요한 만큼만 절제하며 자연을 사용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들소를 사냥할 때도 필요한 식량만큼만 사냥하고 식량을 공급하는 자연에 감사하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아라파호족은 ‘그대에게 필요한 것만 취하고 대지를 처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가르치고 있다. 대지가 생명의 원천인 만큼 ‘어머니’인 대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정령’을 향한 그들의 신앙은 자연에 대한 경외와 존중 그 자체이다. 이를 원주민의 ‘수준 낮은 신앙’으로 왜곡하는 것은 문명의 오만함일 것이다.
인디언들은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온 만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백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자연을 여기저기에서 파헤치고, 마구잡이 벌목에 나서고, 취미로 들소를 사냥하는 행태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앞뒤 안가리고 자연을 훼손하면 결국 자연이 이상 기후를 통해 복수에 나설 것이라는 인디언들의 경고를 들으면 요즘 얘기되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 인디언들이 훨씬 앞장서서 문제 제기를 해왔음을 알게된다. 시대를 앞선 그들의 식견에 감탄하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인디언에게는 무엇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다.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돌보며 자연이 주는 것들을 공동체 구성원들과 같이 나누는 게 그들이 당연시하는 문화였다. 새일리쉬 족의 댄 조치 추장의 말이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네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눠야만 한다”“인디언들의 문화는 우정과 인간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개인의 소유와 욕망은 그다지 평가받지 못한다...인디언들의 문화는 개인 소유물을 축적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았다. 사실 나의 부족은 개인이 재산을 쌓아두는 것을 매우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다코타 족의 오히예사도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한다. “소유에 집착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것이 우리 인디언들의 믿음이었다. 물질적인 길을 뒤쫓으면 멀지않아 영혼이 중심을 잃는다” 결국 필요한 것 이상을 갖는 것을 죄악시하는 게 인디언의 문화이다.
이렇듯 소유와 욕심을 경원시하는 게 인디언의 삶의 철학인 만큼 탐욕으로 자신들이 살아온 땅을 빼앗아가는 백인들의 모습에 인디언들은 경악한다. 인디언의 눈에 비친 백인들은 물질과 욕망에 기초를 둔 행복관을 가지고 있다. 다코타 족인 오히예사의 삼촌은 삶의 목표를 오로지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두고 있는 백인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고, 끝까지 이익을 추구하며,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으로 여긴다고 고발한다. 인디언이 생각하는 백인들의 모습은 이렇다. ‘속물들처럼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며, 위선적이고 거들먹거린다. 땅을 개인의 소유로 여기고, 곧잘 내 편 네 편을 가린다. 돈과 거짓된 기준의 노예들이다.’ 그러니 미국의 달러 지폐에 적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IN GOD WE TRUST)’가 실제로는 실수로 한 글자를 빠트린 게 아닌가 하는 게 인디언들의 풍자이다. 즉, ‘L’자를 추가해 ‘우리는 황금을 신뢰한다(IN GOLD WE TRUST)’로 바꾸는 게 백인들의 정신에 어울린다는 뼈있는 얘기이다.
백인들의 탐욕과 위선적인 모습은 그들이 앞세운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한다. 오글라라 라코타 족의 ‘붉은 구름(마히피우아 루타)’은 말한다. “당신들의 목사 한 사람도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갖고 있는 재산은 다음 세상으로 갈 때 갖고 갈 수 없노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목사를 포함해 얼굴 흰 사람들 모두가 이 세상의 부를 우리에게 강탈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오히예사도 같은 얘기를 한다. “우리에게 많은 설교를 늘어놓으면서 한편으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선교사들과 그 신도들은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종교에 대해 냉담한 마음을 갖기에 이르렀다...우리가 보기엔 직업적인 목사들, 돈을 받고 하는 설교, 물질을 모으기에 급급한 교회들은 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서 아무런 감화도 받을 수 없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기독교의 위선을 힐난하는 인디언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 당시 인디언들은 상대한 기독교인들은 선교를 한 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불신을 가득 심어준 것이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인디언들이 이렇게 전해주는 얘기를 듣다 보면 누가 더 올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줬는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얻게 된다. 백인들은 문명을 앞세워 북미에 도착했지만 실제로는 탐욕과 폭력 등으로 오랜 세월 북미대륙을 잘 돌보며 살아온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그들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땅을 빼앗으며 생존 자체를 어렵게 한 것이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과거사’에 대해 백인들은 합당한 사과를 하고 인디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인디언들은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오는 등 ‘훌륭한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인디언의 이같은 인상적인 모습에 대해 눈을 뜨게 하고 그들은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