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이중적인 반응이 오가는 이슈이다. 속마음으로는 자주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초연한 척한다든가 하는…. 하긴 이조차 요즘은 보기 힘든지도 모르겠다. 입에다 돈 얘기를 달고 사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빠빠라기’라는 책은 돈 문제에 관한 한 무언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책은 독일인 저자인 에리히 쇼이어만이 남태평양에 있는 폴리네시아의 서 사모아섬에 머물면서 알게 된 얘기를 펴낸 것이다. 쇼이어만은 현지에서 만난 투이아비 추장이 유럽을 다녀온 후 작성한 유럽 사회 비평문 형식의 연설문 초안을 독일어로 옮겨 출간했다.
‘빠빠라기(Papalagi)란 말은 ’백인‘또는 ’낯선 이‘를 뜻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유럽의 백인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빠빠라기의 본래 뜻은 ’하늘을 가르고 나온 자‘이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서 사모아섬에 처음 온 백인 선교사는 돛단배를 타고 왔다. 원주민들은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보이는 하얀 돛단배를 하늘에 난 구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백인들이 그 구멍을 통해 자신들에게로 온 셈이니 백인들을 ’하늘을 가르고 나온 자‘라고 부른 것이다. 어쨌든 빠빠라기는 서 사모아섬에서는 백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각설하고 책의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가 그 대목 때문이니까. 유럽을 다녀온 투이아비 추장은 “선교사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고, 우리를 속였다"라고 고발한다. 이 단도직입적인 얘기는 왜 나온 것일까? 서 사모아섬에 온 선교사가 그들에게 해준 말과 투이아비 추장이 유럽에서 본 것이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달랐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에게 백인들은 하나님만을 숭배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장이 유럽에 가서 본 백인들의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추장은 말한다.
“빠빠라기가 돈이라고 부르는 동그란 쇠붙이와 값진 종이야말로 백인들의 진정한 신이다”
“돈이 그들의 사람이고 그들의 하나님이다”
“그런 사람(백인)은 병들어 있고 미쳐 있다. 그의 영혼이 동그란 쇠붙이와 값진 종이에만 얽매여 있고, 결코 만족할 줄 모르며, 가능한 한 많은 돈을 긁어모아야겠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추장은 자신의 눈에 비친 백인들의 모습이 그러니 선교사들의 전한 백인들의 신앙도 가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빠빠라기는 하나님, 그리스도인, 사랑이라는 말을 단지 입으로만 떠벌린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과 사랑은 하나님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 대신 동그란 쇠붙이와 값진 종이, 물건들, 쾌락의 생각, 기계 앞에 고개 숙인다”
“오늘날 빠빠라기는 일찍이 우리가 갖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우상을 가지고 있다. 빠빠라기의 가슴속에 있는 것 가운데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은 원주민이 백인들의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모습을 보고 선교사에게 속았다고 느끼는 부끄러운 현장의 모습이다. 이러다 보니 추장은 선교사에게 배운 게 아니라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이 더 나은 것이었다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이 혹은 아주 많은 것은 갖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은 전혀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는 우리의 오랜 전통을 사랑하자”
“위대한 정신이 만들어 주는 물건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그다지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이 얘기에는 일차적으로 유럽 백인 사회의 물질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서 사모아섬 추장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런데 바로 질문이 생긴다. 우리와 정말 무관한 얘기일까? 추장이 유럽이 아니라 한국에 왔어도 비슷한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사실 돈을 절대시 하는 물질주의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삶의 수단의 위치에 그쳐야 할 돈이 어느새 목적이 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생텍쥐페리가 쓴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어른들은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제일 중요한 것은 묻지 않고, “그 친구 아버지는 부자니?’라는 것만 고작 물을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과거에 한 지역의 중학교에 가 경제학 강연을 한 다음 받은 ‘부담스러웠던’ 질문들이 떠오른다. 강의를 마친 다음 질문을 받는 시간에 강의 내용에 관련된 질문을 예상해다. 하지만 나온 질문은 ”아파트 몇 평이세요?“”어떤 차를 모세요?“ 같은 내용이었다. 충격을 받았고 어른으로서 부끄럽기도 했다. 어른들의 팽배한 물질주의가 그대로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져 있음을 보여준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얘기한 대로 돈을 우상시하는 물질주의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지만, 한국이 유독 심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 2021년에 선진국 17개국에서 약 만 9천 명의 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삶의 의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퓨 리서치 센터는 응답자들에게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조사 결과 미국 등 14개 국가의 시민은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를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 국민은 어떻게 답했을까? 한국에서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1위 요인은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 즉 돈이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물질적 풍요는 2위~4위에 그쳤고, 그리스와 영국에서는 5위 안에 들지도 못했다. 한국에서는 1위가 물질적 풍요가 2위 건강, 그리고 3위가 가족이었다. 어떤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어느 나라든 돈이 상위권에 들기는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돈이 건강보다도 가족보다도 더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살아가는 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는 돈이 있는 게 편리할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지 못한 분들에겐 국가가 부족한 부분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도 중요하다. 문제는 맹목적으로 돈을 추구하고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 사회 풍조에 있다. 앞에서 소개한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에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종교기관조차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는 씁쓸한 모습을 간혹 보게 되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론적으로 소득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더 이상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돈을 수단의 위치로 내리고 이보다 훨씬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더 중요시하고 이를 실천하며 의미 깊게 살아가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함을 서 사모아섬의 투이아비 추장이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