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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면 보이는 것들

-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by 우보

모두 도시로 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성공할 기회가 많은 곳이니까. 그런데 반대로 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도시를 등지고 숲으로 갔다. 어떤 사람은 자연이 준 소소한 것으로 자족하는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아예 숲을 삶의 둥지로 삼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은 혹한이 몰아치는 시베리아 숲에서 동떨어진 삶을 경험해보기 위해서. 도시에 대열에 서서 보면 모두가 앞다퉈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대열에서 벗어나 보면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온 ‘월든(Walden)’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는 1817년 7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문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부와 명성 등 세속적 성장의 길을 멀리하고 28세의 나이에 문명을 등지고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 주변으로 가 2년 2개월 동안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평생 그는 자유로운 삶의 길을 선택했다. 월든 호수에서의 삶의 기록을 담은 그의 저서는 45세에 소로우가 사망할 때까지 독자의 시선을 끌지 못했지만, 사후 반향을 일으킨다. 참다운 인간의 길을 추구한 그의 삶과 뛰어난 자연 묘사, 그리고 사회에 대한 풍자 등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몸소 체험한 자연의 대서사시를 유려한 필체와 세밀한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꽁꽁 얼었던 호수가 봄을 맞아 녹아가는 과정에서 호수 주변이 계절의 변화를 펼쳐가는 모습, 숲속의 다양한 나무, 자연의 음악을 들려주는 새들, 숲속 동물들과의 ‘동거’ 등 얘기를 듣다보면 한 편의 생생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소로우는 왜 성공을 위해 도시의 삶에 몰입할 젊은 나이에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숲으로 들어갔을까? 그는 사소한 일에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기보다는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하는 삶을 원했다고 말한다. 인생을 깊게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는 이런 삶을 살기 위해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소로우는 이런 삶의 철학을 가졌기에 부질없는 외형을 추구하는 도시의 삶에 대해 어리석다며 통렬한 비판을 한다.


“사람들은 그릇된 생각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좀이 파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 갈 재물을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


소로우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강조한다.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

“‘자발적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그는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하는 게 아니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같은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며, 삶의 목표가 이 것 한 가지뿐인 것처럼 잔뜩 긴장의 수위를 높인 채 질주하곤 한다. 그런데 이 성공의 기준은 따지고 보면 잘못된 것이다. 소수만을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고 나머지 사람들의 소중한 삶을 실패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삶을 성실하고 풍성하게 잘 살아낸 사람은 재산과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 성공한 인생인 것이다. 소로우도 이 점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의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월든에 인용된 체프먼의 시에는 소로우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허위의 인간 사회여

세속적인 명성을 찾기에 바빠

천상의 뭇 즐거움은 공중에 흩어지는구나!

월든에서의 소로우의 삶은 정신의 자유를 얻기 위한 자발적 가난의 실천이었다. 그는 불과 28달러를 들여 작은 집을 지었다. 가구는 손수 만들거나 돈을 들이지 않고 구했다. 침대, 탁자, 책상, 의자, 거울 등 꼭 필요한 것들만 마련했다. 음식에 대한 그의 생각도 단순함 그 자체이다.


“사람이 동물처럼 단순한 식사를 하더라도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보통날 점심때 갓 따온 옥수수를 넉넉히 삶아 거기에 소금을 좀 뿌려 먹는 것 말고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렇기에 소로우에겐 지난 시간이나 오지 않는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진리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의 장소와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나 ‘지금 살고 있는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맥락이 같은 얘기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 시간’은 이 순간, 즉 현재이다. 성실하고 풍성하게 살아낸 현재가 모여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소로우가 월든에서 하고 싶어했던 말은 맺음말에 그 정수가 축약돼 있다.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쏙 들어와 박히는 글인데 천천히 음미해보자.


“그대여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대의 마음 속에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라. 그곳을 탐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도 높은 수준의 정신 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해 낮은 차원에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월든은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로우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소로우가 비판했던 모습이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더 나아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많은 사람이 월든에 감동했지만, 실제 삶은 소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살지 말고 이렇게 살아보라!’는 소로우의 외침은 우리에게 여전히 삶의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등대’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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