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춘천에 머물게 했던 건, 그날의 노을이었다.
회사 일로 갑갑함이 목 끝까지 차오르던 시기였다.
나는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로 출퇴근하며 매일 3시간을 왕복하던 경기도 낡은 복도식 전세 아파트를 떠나기로 했다. 그 대신 춘천 만천리에 200평짜리 대지 위에 곱게 올려진 30평짜리 이층 집을 갖게 된 것이다.
나를 춘천으로 가게 한 건 벨기에에서 온 사무총장 B였다. 참고로 나는 그 뒤로 그 나라 맥주를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너는 최고야. 너를 믿어.” 나를 더 아프게 한 건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원헌드레드퍼센트 지지한다고 말해주던 직속 상사이자 둘도 없는 친구 O였다. 그랬던 그가 B의 수상한 지시를 받고 하루아침에 나를 회사에서 불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러니했다. 헤어지자고 먼저 말할 타이밍을 서로 재던 연인 같았다. 안 그래도 언제쯤 그만둬야 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막상 이유도 없이 내쫓긴다고 하니 내가 먼저 차이는 것처럼 억울하고 분했다.
왜 그랬을까. 퇴근 후 술 마시자는 말에 기쁜 얼굴로 따라나서지 않아서? 중고 카메라 사러 남대문에 간다는 말이 사실 자기와 같이 가 달라는 거였단 걸 눈치채지 못해서?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나는 이유는 고작 이런 것들 뿐이었다.
한 달 내내, 회유와 압박이 여러 경로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고작 열 명 남짓한 코딱지만 한 사무실에서 O와 B, 인사 담당 A가 회의실에서 나를 두고 속닥이는 소리가 그대로 밖으로 흘러나왔다. 시트콤 같았다. 회의에 들어갈 때면 핸드폰 녹음기를 켜두고 들어가곤 했다. 노무사 친구의 조언이었다.
나는 싸움을 쉽게 포기했다. 그렇게 버틴 들 내게 남는 건 거기 계속 다니는 일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더 이상 거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슬픈 표정을 지었고, 약간의 억울함을 메소드 연기로 표현해 몇 달 치 월급을 더 받아냈다. 그 돈으로 춘천 집 계약금을 냈고, 퇴직금으로 잔금을 치렀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춘천사람이 되었다.
엄마아빠의 고향, 방학과 명절마다 찾아가던 할머니집, 닭갈비와 막국수가 있는 곳
집을 고른 건 다소 충동적이었다. 가격도 위치도 모르는 채 네이버 부동산에 떠있는 매물정보를 남편이 1차로 거르고, 부동산과 약속을 잡았다. 주말이면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도 넘는 남의 집을 찾아다녔다. 그중엔 제법 깨끗하게 고쳐놔 마음에 드는 집도 있었고, 대문과 지붕이 다 허물어져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집도 있었다. 확실한 건 무조건 서울보다, 그리고 경기도보다 말도 안 되게 싸다는 거였다. 우리가 살던 복도식 20평도 안 되는 30년 넘은 아파트 전세금이면 춘천에선 50평짜리 한옥주택을 살 수도 있었다. 그 집은 꽤 맘에 들었지만 바로 옆 보신탕 가게가 있어서 계약을 포기했다.
그렇게 춘천 집 찾기 프로젝트는 어느새 3달을 넘겼고, 지도 위 표시해 놓은 우리가 본 집이 100개가 다 되어갈 무렵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이제 집을 본다는 거 자체가 끔찍해졌다. 주말에 춘천에 가자는 남편에게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수요일이었던 어느 삼일절 공휴일, 눈을 떠보니 난 다시 또 춘천에 가게 되었다. 오늘은 춘천에 집 보러 가지 말고 그냥 놀러 가자는 남편의 말에 또 홀라당 넘어가버린 거다.
종종 춘천에 어떻게 이사 오게 된 건지 묻는 사람들에게는 여기서부터 쓸 얘기를 들려준다. 벨기에의 벨도 꺼내지 않는다.
차를 타고 춘천으로 가는 길, 꽤 긴 다리를 넘으면 저 멀리 흐르던 강물이 어느새 바로 창 옆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여기서부터가 춘천이다 “라고 느껴지는 나만의 시작점이다. 행정구역상의 춘천의 범위가 아닌, 내 마음의 범위로 내가 정해둔 춘천, 거기에 딱 일단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조건 창문부터 연다. 그리고 밖으로 손을 조금 뻗는다. 손끝과 코끝으로 바람을 느끼고 깊게 공기를 마신다. 춘천의 공기다, 달다 확실히 서울 공기보다 맛있다.
가벼운 등산을 가기로 하고, 산에 들어설 무렵 남편이 눈치를 보며 핸드폰 속 사진을 보여줬다. 사람이라면 이마에 전원주택이라고 써 붙였을 것 같은 이층 집이었다.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래 내려가서 보러 가자고 말했다.
산에서 내려오니 어느덧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집이 맘에 들어도 절대 티 내지 말라고 문 앞에서 남편이 신신당부했다. 그렇지만 표정이 도무지 감춰지지 않았다. 2층 거의 벽 전체가 창문으로 되어있었는데 그 너머로 노을이 예쁘게 물들고 있었다. 촌스러운 민트색 벽 장식, 김치냉장고 때문에 울퉁불퉁해진 나무 바닥도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매일 보고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해질 것도 같았다.
집을 보고 나와서 동네를 하염없이 뱅뱅 돌았다. 그때까지 평생 이름도 모르던 동네 이름 세 글자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지금껏 우리가 직전 거래비용을 평당으로 나눠가며 정리해 둔 수십 개의 지도 위 표시된 점들도 다 소용없었다.
그래 여기야.
나를 춘천에 머물게 했던 건, 그날의 노을이었다.
그 집에서 2년을 살고 떠났다. 사는 내내 예쁜 노을을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가 떠난 뒤 새로 온 집주인은 그 집에 ‘노을집’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