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30대를 추억하며
눈물도 격렬함도 지나보낸뒤, 남은 건 고요함이었다. 마치 비바람이 그친 뒤, 흙내음이 은근하게 퍼지는 저녁처럼. 나의 30대의 시작과 끝은 그랬다. 두 아이의 출산과 육아, 회사, 내조, 결혼생활, 박사과정 모든게 미완성이었고 치열했다. 하루 3~4시간이 내 수면시간의 전부였고, 머리는 감을 때마다 수백가닥이 빠졌다. 양쪽 눈은 항상 벌겋게 붉어져 있었다. 하나를 잠재우면 다른 하나가 터졌다. 집안에서의 난장판은 반복의 끝이 없었고, 회사 책상위에는 집채만한 바위덩어리가 얹혀져, 하루종일 그것을 연필만한 망치로 깨부시다 지쳐 집에 돌아오는 고단한 날들이 이어졌다. 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숨이 멎을 것 같은 날들도 있었고, 억지로 웃으며 살아야 했던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모든 30대의 피폐함과 격렬한 독기가 조금씩 빠져나간 뒤, 내 삶은 비로소 가을의 저녁 길에 선 사람처럼 고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40대가 되니 이제는 조금씩 나를 둘러싼 사소함의 신비로움을 찾아본다. 비가 오면 빗물에 젖은 흙냄새, 노을이 번지는 하늘의 다채로움을 만끽한다. 점심 한 숟가락의 풍부함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차를 고르고 마실 시간이 생겼다. 책 한 구절을 마음에 담아두는 법도 다시 배웠다. 혼잣말로 기도를 중얼거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에도 “그래도 괜찮아”라고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한 때는 원망, 미련, 아쉬움, 분노, 후회, 자기연민, 연약함... 그 모든 감정을 애써 외면하기 바빴다. 그건 나의 삶이 아니라고, 내가 선택한 모습이 아니라고. 그러나 그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을 때, 비로소 끝맺음과 또 다른 시작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마무리란 외면하고 잊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용기 내어 나에게 말해본다. “잘 버텼어. 잘 싸웠어. 이제 괜찮아.” 그래서 나에게 마무리는 정말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가끔 찾아드는 텅 빈 마음은 여전히 고독함을 건네주지만, 그 빈자리에 따뜻한 바람이 지나게 할 수 있는 용기도 갖게 되었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도 나는 그 바람을 더 느끼기 위해 애쓴다. 이제는 나를 안아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게 무엇이든. 그러니 안녕, 나의 30대여. 그리고 어서 와, 나의 다음 계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