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에피소드로 남은 웨일즈
웨일즈는 처음이기도 하고 아들이 공부할 때 share house를 했던 친구(나와도 친분이 있는,이하 앤디)가 사는 곳이라 맨 먼저 물망에 오른 곳이다. 소식을 접한 앤디가 자기 집에서 지내자고 제안해서 우리는 각자 선물을 준비해 놓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는데 여행 이틀 전 집수리 사진을 줄줄이 보내왔다. 터키 친구에 이어 연타로 뒤통수(?) 맞은 아들, 부랴부랴 숙소를 잡다 보니 이래저래 김도 빠지고, 이번 여행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친구 만남도 무산될 것 같아 웨일즈는 3일로 축소되었다. (대신 경유지인 브리스톨 일박이 끼이게 된 것). 이번 여행은 날짜별 일정은 짜지 않고, 이동 중 기차에서 또는 일과를 마친 후 숙소에서 다음날 일정을 정하기로 했는데 웨일즈는 앤디 집에서 앤디의 조언을 받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예습조차 하지 않았다. 급검색해 보니 웨일즈 여행은 대부분 수도 카디프 중심, 카디프에 Airbnb를 예약했다. 우리나라 서울에 관광객이 몰리는 것처럼 그 나라의 첫 방문은 대부분 볼거리가 몰려있는 수도에서 시작된다. 작은 나라일수록 그런 경향이 뚜렷한 듯.
웨일즈에 도착하니 역시나 바람, 섬나라인 영국의 지리적 특성상 바다를 끼고 있는 관광지나 휴양지는 바람이 기본값이다. 비가 동반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 날씨는 맑은데 바람이 세다.
첫날, 브리스톨에서 오후에 출발한지라 바로 우리의 두 번째 Airbnb를 영접하러 갔다. (Airbnb도 대부분 오후 3시 입실이다) 역에서 가까운 거리, 걸어가는데 집 주변이 범상치 않다. 좁고 긴 수로와 다리, 수로 양쪽으로 늘어선 커다란 나무들과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집들. 물 위로 유유히 움직이는 큰 거위들.. 너무 한적해서 숙소인지 유배지(?)인지 잠시 현실감 상실! 그에 비해 숙소는 의역하자면 ‘코지’, 직역하면 ‘작다’. 일층은 부엌과 거실, 이층은 침실 두 개와 화장실 하나로 자투리 공간 하나 없는 알뜰한 집, 신통방통하다. 문제는 이층 구조, 캐리어는 침실에 있으니 부지런히 오르락내리락하며 부엌, 거실용품을 날라야 한다. 처음에는 그동안 못한 운동 해야지 했는데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지친다. 캐리어 또한 로봇 태권브이처럼 분해되고 합체되고. 지금 생각하니 캐리어를 1층에 두었으면 좀 편했을까 싶은데 화장실이 이층이니 도끼니개끼니, 답은 다음부터 이층짜리 숙소는 절대 사양!
우선 비바람에 젖은 옷을 세탁기에 돌리면서 그림 한 장, 집밥으로 저녁을 먹고 웨일즈의 첫날을 마감했다.
이틀차, 도착과 출발이 포함되는 3일 여행에서 온전한 관광은 하루정도다. 꽉 찬 하루를 위해 아침 일찍 출발, 카디프 성은 도심에 있어 오픈전이라도 거리를 구경하면 된다. 웨일즈 상징인 빨간 용 깃발이 환영 인사처럼 휘날리는 Centra Market을 돌아다니다 야외 카페에서 그림 한 장. 카디프 성은 이천 년 로마시대에 세워진 요새로 뷰트 후작 가문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 귀족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중국 일본어 오디오 가이드는 있는데 한국어 오디오는 없어서 기분이 안 좋았지만 성 안 넓은 정원에서 그림 한 장 그린 걸로 용서, 그리다 보면 풀리는 어반스케치의 매직? 오는 길에 카디프베이를 산책, 인공해변이라 별 감흥은 없었지만 ‘온 김에~’
알고 보니 앤디 집은 웨일즈의 맨 끝 휴양지 바닷가, 카디프에서 4시간 30분, 거기 묵었다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거리다. 차라리 잘 됐다 했는데 둘째 날, 너무 멀어서 못 올 것 같았던 앤디가 온다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아들은 언제 뒤통수를 맞았냐는 듯 들뜬 마음으로 기차역으로 마중을 가고(누가 현지인인지ㅎ) 나는 한국에서 공수해 온 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차렸다. (미리 알았으면 밀키트나마 진수성찬을 준비했을 텐데). 식사를 마치고 회포를 풀러 펍으로 간 두 사람이 새벽에 들어오면서 앤디는 우리 숙소 소파에서 자야 했다. 다음 행선지 블랙불은 기차로 4시간, 앤디가 올 줄 모르고 아침 일찍 예약한 기차 시간에 맞춰 단잠에 빠진 두 사람을 깨웠다. 술이 덜 깼는지 의하한 얼굴로 따라나선 앤디, 오늘도 같이 보내리라 생각했었나 보다. 순간 비바람 속 브리스톨 일박의 후회.. 그냥 웨일즈에서 지낼걸. ‘그러게 앤디야, 좀 빨리 알려주지 그랬니’ 미안함에 변명 삼은 혼잣말. 세상일이 그렇다. 꼭 될 줄 알았던 일은 안되고 안 될 것 같았는데 되기도 하는, 두서가 없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나마 훈훈하게.. 그 정도면 웨일즈도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