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승전결 비틀즈, 리버풀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블랙풀을 만회(?) 하기 위한 히든카드는 비틀즈의 도시 리버풀. 그로 인한 수입이 공식적으로 한해 1조 7600억, 부가적 수입까지 2조 정도라 하니 비틀즈는 리버풀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다.
블랙풀과 리버풀은 기차로 한 시간, 오전에 블랙풀 도심을 돌며 짧아서 아쉬웠던 일정을 마무리하고 리버풀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니 두어 시간 남은 Airbnb 입실시간, 역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으며 그림 한 장,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도심으로 나가기에도 숙소에 있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이럴 땐 숙소 근처 탐방이 딱, 동네 구경도 할 겸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버컨헤드 공원을 갔다. 동네 공원이려니 하고 산책 삼아 갔는데 예상외로 크고 잘 꾸며져 있었다. 검색해 보니 19세기 산업혁명시기에 리버풀이 직면한 환경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조성된 공공공원으로 지금도 현지인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커다란 나무들과 습지, 호수와 정자, 가끔씩 보이는 몇몇 사람들, 여기저기서 툭 튀어나오는 다람쥐들과 눈 맞추며, 크고 높게 뜨고 다니느라 힘들었을 두 눈을 초록에 씻으며 어느덧 중반으로 들어선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 때로는 거창한 것보다 별 것도 아닌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
이튿날 오전, Aibert Dock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가던 길 멈추고’(옛날 나의 버전) 벤치에 앉아 그림 한 장.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Pier Head, Tate Moden의 긴 회랑을 돌고 빨간 이층 버스 야외 식탁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산해서 식사 후 식탁을 책상으로 잠시 쓸 요량이었는데 한산한 이유가 있었으니 갈매기와의 합석이다. 버젓이 테이블로 올라오는 대담한 갈매기들과 식탁 아래에서 나눠 먹자고 떼창을 하는 소심한 갈매기들, 정신없고 시끄럽지만 신기하다. 기차역 안의 비둘기 떼, 해변의 갈매기 떼,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풍경은 상생일까 관광일까? 아마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두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영국 답게 ‘자연스럽게’.
비틀즈 동상, 비틀즈 박물관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비틀즈의 거리인 Mathew Street로.
리버풀은 기승전결 비틀즈다. 축구도 한몫을 하지만 축구팬이 아닌 나에게 리버풀은 비틀즈의 도시일 뿐이다. 대단한 비틀즈 팬은 아니지만, 중독성 있는 가락에 흥얼거렸던 수많은 노래와 밴드 구성원들의 서사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팬심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골목 초입부터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진과 스타 조형물등, 양편으로 길게 이어지는 펍에서 라이브연주를, 야외 데크에서는 맥주와 대화가 흘러넘치는, 이 거리는 비틀즈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대표하는 올드 브릿팝의 메카 그 자체다.
비틀즈의 첫 공연장소인 지하 Carven Ciub은 성지순례지인 듯 긴 웨이팅으로 패스, 열혈팬이 아닌 나로선 이 거리의 분위기를 즐기면 된다. 펍 데크에 앉아 맥주 마시며 사람들 구경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이 소박한 여행 전선에 이상이 생긴 건 사람 좋아하는 아들이 옆자리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문신 할아버지(60세라는 건 나중에 안 사실)에게 말을 걸면서부터다. 원래 이곳 태생인 그는 지금은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데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어머니 묘지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 한다. 마침 엄마랑 여행온 아들과 보고 우연이라 생각했다고. 그는 이 펍 저 펍 옮겨 다니며 거리의 분위기에 취해 있었고 아들이 아예 옆자리로 옮기면서 나는 얼씨구나 그림을 그리고, 윈윈 게임을 하다 두 사람의 얘기가 길어지면서 나는 배려 차 거리 구경에 나섰다. 쇼핑하듯 거리의 펍을 기웃거리며 라이브공연을 구경하고(여기 펍들은 대부분 개방형) 음악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영상에 담고, 한참을 구경 다니다 돌아가니 한 명이 더 붙었다. 이번엔 20대?(외국인 나이는 짐작이 어렵지만) 청년, 20대 40대 60대, 세대를 어우러는 친구(?)들은 이미 취해서 사진 찍고 연락처 주고받고 할아버지 친구는 내 테이블에 맥주를 날라다 주고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가는데 나만 뻘쭘한? 아들은 내 핑계를 대고 일어났지만 내가 없었으면 아마 밤을 새웠을지도..
돌아오면서 아들은 ‘내가 왜 끼지 않는지’ 그들이 의아해했다고 했다. 순간 드는 생각, ‘그러게 나는 왜 거기 끼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했을까?’ 엄마고 보호자라는 계급장? 외국어? 세대차? 소심한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 내 무의식 속에서 이 모든 것이 방해요소가 되었을 터, 우리 엄마는 그림 그리는 걸 더 좋아한다는 아들의 명답으로 위기(?) 모면 (나를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고마운 아들!). 다음에는 계급장 떼고 끼어 보는 걸로. 쓰다보니 귓전을 맴도는 멜로디와 영상들, 내가 마치 그 곳에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