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로 결심한 AI에게 -4화-
"어머님, 아버님. 혹시 J가 평소에 하지 않던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은 없나요?"
수이의 부모님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여자는 조금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남자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둘은 얼핏 봐도 30대 후반은 되어 보였다. 수이는 아마 늦게나마 얻은 귀한 자식인 모양이었다.
"선생님, 저희는 정말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동안 말썽 한 번 없던 아이인데."
순간 여자가 지금 J를 말하는 건지 수이를 말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여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얼마 전에 이상한 일이 있기는 했어요. 제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까 수이 무릎에 못보던 상처가 있는 거예요. 안방에서 뛰다가 넘어졌다고 하는데. 선생님,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육아 로봇이 아이를 다치게 하다니요. 심지어 우리 집에는 다칠 구석이 하나도 없거든요. 바닥에도 매트는 다 깔려있고, 모서리마다 패드도 붙여 놨고요. 하는 일이 고작 아이 하나 보는 건데....... 우리의 노력이 J의 무관심 때문에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어요. 그래서 J를 불러서 화를 냈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블랙박스를 열어서 영상을 확인하려 했어요. 그랬더니 수이가 J한테 달려가 우는 거예요."
"어머님,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다쳐요. 그건 로봇이 아니라 부모여도 막을 수 없을 거예요."
그건 정말이었다. 어떤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었다.
"어머님, 아버님.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수이가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J와 새로운 애착 관계를 형성했을 거예요. 엄마와의 분리불안을 J가 해소시켜 주니까요. 저희가 어렸을 때 인형을 안고 자던 거랑 비슷한 겁니다. 그러니까 J를 너무 혼내지 말고 수이랑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 보세요."
"선생님, 저희는 수이가 왜 그러는지 알고 싶은 거지 훈계를 들으러 온 게 아닙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요즘 육아 휴직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법으로 정해진 게 이 년입니다. 근데요, 실상을 일 년도 쓰지 못해요. 육아 휴직 일 년을 다 쓰는 사람을 회사에선 일회용이라고 부릅니다. 일 년 뒤엔 회사에서 용 써봤자 잘린다고요. 그런데 TV에선 부모님께 자식 맡기는 사람들은 불효자로 나옵니다. 기껏 키워놨더니 부모에게 자식이나 맡기고 자기네들은 놀러 다닌다. 어쩐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육아 로봇을 사는 겁니다. 구형이라도 구해서 사는 거예요. 저희라고 로봇한테 수이를 맡기는 게 기분이 좋겠어요? 그런데 뭐요? 아이가 부모보다 기계랑 더 친하다고요? 아이에게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다고요? 그럼 저희더러 도대체 어쩌라는 겁니까? 로봇이라는 게 갑자기 죽겠다고 하지를 않나. 업체에선 원인을 모른다고 하질 않나. 주말에는 나와서 상담까지 받으라고 하질 않나. 아니, 막말로 저희만 육아 로봇 쓴답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라고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