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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r 11. 2024

그렇게 J가 나에게 왔다.

죽기로 결심한 AI에게 -5화-

진우가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자 정우는 나에게 선물이라며 휴가를 주었다. 진우는 자기가 볼 테니 어디 마음 편히 놀다 오라고. 친구들이랑 어디 가까운 데라도 갔다 오라고. 그래서 친구들과 날짜도 맞추고 근교 카페도 알아봤다. 다들 억지를 써가며 남편에게서 겨우 얻은 휴가였다.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지만 진우 없이 나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줌마 셋이 모이니 아이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댐이 보이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대학 생활을 회상하는 것도, 예쁜 케이크 하나에 감탄하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날 정우는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전화를 해서 나를 귀찮게 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밥은 어떤 걸 먹이는지, 목욕물은 어떻게 체크하는지, 온종일 아이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그래도 전화로 알려주는 게 편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며 이것저것 알려주거나, 영상통화로 아이를 달래주었다. 그래도 모두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이는 어디서나 비슷하게 크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엄마들도 어디서나 비슷하게 자랐다. 진우가 커가는 모습은 상상이 되었는데, 나는 자라 어떻게 되는지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진우 팔에 작은 멍이 나 있었다.


J의 이야기도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수이는 분명 거실에서 놀고 있었는데 잠시 요리를 하고 오니 안방 화장대에 올라가 있었다든가. 유아용 의자에 앉혀서 벨트를 고정해 놓아도 잠시만 눈을 돌리면 발을 빼서 의자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든가. 어떤 때에는 배가 고파서 울었는데 어떤 때에는 배가 아파서 울었다든가. 하지만 그건 모든 아이의 특징이 아니던가.


사실, 이런 상황에 당황해서는 J라고 볼 수 없었다. 이제 막 중고등학생이 되는 아이들의 상당수는 J 시리즈의 손에 길러졌을 거다. 당시에는 육아 문제를 해결한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광고도 많이 했다. 그래서 J 중 하나가 자살을 선언했다는 사실이 청소년들에게 꽤 충격적이었나 보다. 결국, SNS를 중심으로 AI 로봇에게 인도적 절차를 보장하라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어른들 역시 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J에게는 개발자들의 연구 외에도 상담 치료가 병행되기로 했다.


그렇게 J가 나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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