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로 결심한 AI에게 -6화-
"J가 말하는 죽음이란 게 정확히 어떤 거죠?"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직원은 지금까지 그 질문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모든 AI 로봇들은 본인이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용 기간이 조금 남았거나 많이 남았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AI 로봇이 그걸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죠. 저장용량도 죽음과는 상관이 없어요. 메모리가 부족해지면 특정 시기를 설정해 그 당시의 기억을 완전하게 삭제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개성은 그대로 남아있어요. 그건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선택의 방향성 같은 거니까요."
"방향성이요?"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직원을 바라봤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그게 솔직히 저도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회사에서 교육 담당자들이 떠드는 이야기로는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 스스로가 결정한 선택과 그 결과가 앞으로의 선택의 기준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화재를 경험한 AI 로봇은 집안에서의 요리에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앞으로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거죠. 그런데 AI 로봇의 모든 메모리를 삭제해도 이 경향은 그대로 남아있어요. 대체로 AI 로봇이 자신을 다른 로봇과 구별 짓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각자의 선택과 결과가 다르니까요. 그렇게 AI 로봇의 성격이 결정되는 겁니다."
듣고 보니 AI 로봇을 구매한다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AI 로봇을 기른다는 말이 더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우는 밥 먹는 습관도, TV 보는 자세도, 심지어 과자 취향까지 나를 닮아갔다. 아이가 알아서 큰다는 말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아이의 전부는 나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가끔 나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럼, 그게 사람의 정신과 비슷한 거군요."
"그건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저희는 편하게 인공지능 고유의 개성이라고 부릅니다. 최근에 나온 제품일수록 이 개성이 뚜렷해요. 그리고 인공지능의 개성은 사용자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에게 좋지 않은 결과란 사용자의 불만족을 의미하니까요."
어느 날엔가 쇼핑 채널에서 새로운 AI 로봇을 소개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J와는 다른 알파벳으로 이름 붙여진 시리즈였다. 그 모델은 얼굴형과 헤어스타일, 체형까지도 사용자 맞춤으로 설정할 수 있었고,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확실한 건 어떤 개성이 발달하더라도 AI 로봇이 스스로를 공격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물론, 로봇이 인간을 구하기 위해 특정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파손된 경우는 종종 보고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희생에 가까우니까요. 그런데 J는 명백하게 자살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자신을 스스로 죽이겠다고요. 이제는 언론에서도 난리예요. 이거 저희도 죽을 맛입니다."
"그럼 J는 도대체 어떻게 자살을 하겠다는 거죠?"
한참 뒤에 직원은 입을 열었다.
"그걸 알아봐야죠. 선생님도. 저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