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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Like Song May 11. 2023

"딱 한 번만"

2014년 9월 2일 화요일, 생활관 탁자에서.

"딱 한 번만"


 마음을 뒤흔드는 단어다. 달콤한 현재는 추상적인 미래를 부숴버린다. 갑자기 비어버린 싸지방, 오늘따라 눈에 띈 소설 한 권, 우연히 방영되는 TV속 영화가 글쓰기 계획을 어그러뜨린다.


오늘만

이번만

진짜로

한 번만


 낱말이 주문처럼 머릿속을 스쳐간다. 달콤한 휴식을 위해 계획을 새로 짜는 은 무척 손쉬운 일이다. 내일은 모처럼 근무가 없는 날이니까. 오늘 연등시간에 영화 한 편쯤 봐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미리 쓸 내용을 구상해 두면 고민하는 시간 없이 술술 써 내려가면서 두 배는 시간을 아끼겠지. 정 시간을 많이 쓰면 운동이나 기타 연습시간을  끌어다 쓰자.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도 며칠씩 한 마을에서 쉬는 사람들이 있었잖아."


 끝내는, 나의 글감이자 이곳 병영에서 삶의 철학이 되어가고 있는 순례길 이야기마저 끌어다 쓴다. 그러자 놀랍게도 죄책감이 마음속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들이 쉬는 이유는 다시 걸을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즉, 현재의 달콤함이 아닌 미래의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이유는 아니다." - 그라뇽의 방명록에 있던 말씀.


 800km의 여정을 거쳐 산티아고에 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화살표를 따라 계속 걷기만 한다면 누구나 이룰 수 있다.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이미 비슷한 얘길 수도 없이 해왔다). 짬을 내서 계속 글을 쓴다는데 의미를 둬야지 이런저런 여건 때문에 미루면 영원히 닿을 수 없다. 스페인 시골 마을의 별과 와인은 그나마 '달콤한 유혹'으로 정상참작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고작 몇 년 전에 개봉한 '타짜'에 흔들리다니, 그래선 아니 될 일이다.


 물론 이렇게 열심히 하루하루 글을 기록해도 전역 전에 여행기를 완성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없을 것이다. 좀 역설적인 논리지만, 마지막까지 결과를 추구하며 노력해야만 끝내 그 결과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훈련을 하며 하루하루 늘어가는 실력에 재미를 느끼듯, 하루하루 채워지는 이 노트에 만족감을 느끼자.


-


10년 가까이 지난 뒤 읽어보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이야기는 생략. 이 뒤에도 범죄의 재구성, 배트맨 등등 수많은 명작 영화의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 여행기는 완성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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