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중
[꽃 사랑]
숲가에는 솜털과 노랑꽃을 가진 양담배풀이 위엄을 드러내며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늘고도 억센 줄기 위에서 흐느적거리는 부처꽃과 분홍바늘꽃은 골짜기를 온통 보라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안쪽 잣나무 아래에는 빨간 디기탈리스가 품위 있고 아름다우면서도 이국적인 자태를 자랑하며 피어 있었다. 그 꽃은 은빛나는 털을 지닌 넓적한 근생엽과 튼튼한 줄기, 그리고 높다랗게 늘어선 예쁜 분홍빛의 꽃받침을 가지고 있었다. 옆으로는 갖가지의 버섯, 두껍고 넓적한 우산버섯, 괴상스럽게 생긴 선옹초, 붉은 가지가 많이 난 싸리버섯, 그리고 이상하게도 색깔이 없으면서 엷게 기름기가 넘치는 석장초. 숲과 초원 사이의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두렁에는 아귀 센 금작화가 불에 그을린 듯한 짙은 황색으로 반짝이고, 라일락 담자색의 길쭉한 석남화가 무리지어 있었다. 그리고 재벌 풀베기를 바로 눈앞에 둔 초원에는 황새냉이, 동자꽃, 꿀꽃, 체꽃이 다채롭게 우거져 있었다.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49쪽)
작가가 되려면 무릇 꽃 이름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잡초들이라고 한꺼번에 퉁 치는 무식함을 모면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가 얼마나 식물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이 묘사에서도 단번에 드러난다. 저 자세한 묘사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헤세가 묘사한 18개의 꽃이나 식물 가운데 내가 정확히 아는 식물은 몇 되지 않는다. 그나마 눈에 익은 꽃이 바로 황새냉이꽃이다. 내가 그 꽃 이름을 정확히 아는 이유는 내가 그 꽃으로 시 한 자락을 지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졸시를 옮겨 본다.
[황새냉이꽃]
봄이 올 즈음이면
논에 밭에
가장 먼저 봄소식 들고 와
향긋한 냄새로
잠을 깨우네
입맛 없는 게으른 이들에게
약해 빠진 도시인들에게
순한 잎이며
쌉싸르한 뿌리까지
국으로 무침으로
줄 수 있는 모든 모양 몽땅
나눌 수 있는 모든 오장육부 몽땅
마지막 흙뿌리 터럭 하나까지 몽땅
흙내음 가득한 국물 한 방울까지 몽땅
하나도 남김 없이 몽땅
뼈로 피로 폐로 간으로 구석구석
퍼주고 나누어주고
사라지네
하얀 꽃잎
십자로 엮고
하트 하트 하트
당신 심장으로 미끄러져 가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봄 이태훈. 2020.05.20)
황새냉이꽃은 봄에 피지만 여름까지 그 생명을 유지한다.
바야흐로 봄꽃이 만발한 시기다.
알면 보이고, 모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봄꽃이다.
봄꽃은 주로 잡초라고 불리며, 이름 없는 꽃으로도 불린다.
그리고 너무 작아 사람들은 그게 꽃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밟고 지나다닌다.
거기, 분명히 꽃이 피어 있음에도, 사람들은 결코 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봄 길가에, 들판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잡초일 뿐이다.
하지만, 보라.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가.
봄꽃은 모두 예쁘다. 모두 아름답다.
https://youtu.be/rfAaiWZhdew?si=cCAtzFyFzzgIJe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