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하게 구워진 단팥빵에서 한가득의 앙금이 쏟아지듯 금빛이 뿜어 나왔다. 눈을 의심케 만드는 그 많은 빛을 등진 채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화려하지 않았다.
복도의 끝과 끝, 서로 가까워져 가는 변화의 양태였으나 나는 그에게 범접할 수 없었다. 그가 걸어온 무수한 보폭들이 그와 나의 수준을 현격히 벌렸을 것이다. 그 응집된 노력의 양과 질이 내 감각과 운명에 방아쇠를 당긴 듯했다 - 내 존재가 걸어나갔다.
그는 내가 사는 오피스텔의 같은 층 주민이었다. 그를 이웃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그 의미가 현존하진 않는다. 그는 나에게 출근길 복도에서 퍽 자주 마주치는 적당히 늙고 다소 성가신 남자일 뿐이었다. 그는 주 2회 정도 복도에 나와있었다. 간혹 바쁜 걸음에 방해가 될까 좁은 복도에서 그를 마주칠 때면 인상을 쓰며 피해 갔다. 그러나 그 짜증조차 부피와 무게라곤 없는 가벼운 것이었다.
그는 그만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의미가 없는, 어떠한 자극이나 언어와도 상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주변에 얼마나 많이 두고 있을까?
남자에겐 특징이 있었다. 첫인상에서 그 특징은 그를 강렬하게 드러냈다. 물론 강렬함은 짧았다. 퇴색되는 것이 아닌 사라지는 느낌. 길을 가다 장애인을 봤을 때 우리가 받는 강한 인식과 그에 따라 던지는 짧은 시선 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절름발이다.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왼손으로 위태로운 균형을 잡는다. 오른발은 지지대가 되고 왼발은 균형을 위태롭게 한다. 마치 기계가 움직이듯 그의 사지는 입력된 움직임으로 걸음을 만들었다.
남자가 복도에 나오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저 걸음을 위하여. 재활의 목적으로 복도를 걷고 또 걸으며 안간힘을 썼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해 복도를 왕복하는 그에게 복도는 평평한 지구와도 같아 보였다. 그가 내딛는 세 개의 발 걸음은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 충분했다. 물론 내가 걷는 두 개의 발걸음이 채 끝나기 전에 사라질 그 정도 깊이의 연민이었다.
그러나 단 하루, 그날은 달랐다. 그날은 존재가 걸어왔다. 제논의 눈에 보였던 화살이 그러했을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의 운동은 걸음 걸음마다 정지하였다. 쉼 없이 움직이는 시간의 완곡함이 아닌 진리를 포착한 공간의 왜곡과 같았다. 니체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던져지는 나의 시간이, 복도보다 넓은 나의 공간이, 세 걸음보다 빠르고 멀리 가는 나의 두 걸음이, 과연 그 존재의 걸음보다 위대할까? 태만과 오만으로 점철된 나의 가벼운 걸음보다 오직 걸음을 위한 걸음을 걷는 존재의 우직한 걸음이 분명 더 위대하다.
나는 단 하나의 성공을 위해 미천한 실패를 몇 걸음이나 걸어갈 수 있을까? 걷기 위해 걷던 위대한 존재를 마음이 아닌 정신 속 깊숙이 새기게 된 것은 나 역시 제대로 걸어보기 위함이다.
그날 이후로 존재도 그의 걸음도 볼 수 없었다. 우연이라기엔 운명과 같았고 운명도 그저 하나의 우연이다. 이 세상의 무수한 존재들이 지금도 걷고 있다. 정신이 들 때마다 아로새긴다. 지금, 나는 걷고 있는가, 또, 멈춰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