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사유 전환을 통해 물자체를 제외한 세계의 존재를 인식의 영역으로 귀속시켰다. 이에 따라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것, 감성의 영역에 닿지 아니한 모든 것들은 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태여 버클리와 같이 완전한 존재 부정까지 가지 아니 하더라도 감각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회의는 충분히 마땅하다.
서울에 사는 혹자에게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신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심지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것은 결코 '없는' 것이다. 필자가 즐겨 보는 한 방송인을 큰 화제성으로 스타덤에 올려준 "모르는 데 어떻게 가요!"라는 표현이 다시금 생각나는 순간이다. 감각해야 알 수 있고, 알아야 할 수 있음은 지금에야 자명해 보이지만, 칸트 시대 이전에는 이조차 논쟁의 거리였다.
룩소르 신전의 모습. 이 사진을 본 이상 당신에게 '사진 속 룩소르 신전'은 존재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마케팅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색되지 않는, 노출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구 되지 않고, 흥미를 돋우지 못하는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판매자가 돈과 시간을 들여 제아무리 열심히 상품을 등록하고 뽐내 본들 소비자들이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면 그 상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감각에 닿지 못했다는 점, 2차적으로는 사물의 본질인 목적성이 발현될 수 없다는 점에 그 근거가 있다. 상품은 팔리기 위해 소비자에게 충분히 노출되어야 한다. 노출되지 않으면 팔릴 수 없고 팔리지 못하면 '상'품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상품이 쏟아지는 커머스의 끝나지 않는 우기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내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1초 1분이 아깝게 사람들이 내 상품을 감각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다.
이커머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마케팅 방법론, 브랜딩, 온라인 영업과 상품소싱에 대한 무작위적 정보가 넘쳐난다. 이러한 정보의 99%는 '파는 법'에 대한 고찰이다. 팔아야 돈이 되기 때문, 애초 셀러(판매자)가 된 목적이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니까. 이러한 당위의 의식에 대해 전의식(preconsciousness)의 영역에 발을 담가보면 이런 생각이 뻗친다.
"팔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 사야 한다.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 상품을 보고, 또 알아야 한다."
팔려고 용을 쓰다 보면 안 팔릴 때 쉽게 무너진다. 쉽게 상품 탓을 하게 되고 자신의 무능함에 의욕이 떨어지게 된다. 칸트가 그러했듯 관점의 전환, 작지만 큰 모종의 변화가 필요하다. 팔려고만 하지 말고 내 상품을 보여주려고 하자. 단 한 명의 누군가에게라도 쉼 없이 내 자식 같은 상품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열심히 자랑하자. 아이 엄마가 아는 사람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심지어 자신의 SNS에 육아일기라며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끊임 없이 자랑하듯! 내 상품을 많은 사람에게 알릴수록, 그들이 또 다른 남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다. 말 그대로 바이러스의 원리, 이른바 '바이럴'이다.
핵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상품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보고 있거나 듣고 있거나 만지고 있어야 한다. 긍정하든 부정하든, 누군가에게 추천하든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든,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든 자신의 일기 속 주제가 되고 있든 반드시 누군가와 상호작용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감각을 통해 그들의 오성과 이성 속에 침투해야 한다. 그러면 그 상품은 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