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께 배울 것도 많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호는 민재에게 활기차게 말했다. 민재는 순간 흠칫 놀랐다. 회사에서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을 본게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호감이 더 갔다. 후에 정호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민재는 내심 한 번더 놀랐다.
그렇게 민재가 정호를 처음 만나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한지 6개월이 흘렀다. 민재는 승진 심사에서 다시 낙방해서 점점 경영진이 될 가능성은 희박해져 갔다. 민재도 학벌이 뒤지지는 않았지만 승진에 포함된 사람들은 학벌과 모두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민재의 회사가 학벌 등에 연연하지 않고 실력으로만 승진을 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학벌, 지연 보다 더 중요한 배경이라는 요소가 승진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
누구의 아들이다, 누구의 조카다. 그런 사람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했다. 부장까지는 그런 것이 없어도 올라갈 수 있지만 거기서 회사 중역으로 올라가는 건 또 다른 세계 였다. 정호가 민재에게 말이 짧아지고 예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민재는 더 이상 정호에게 이용가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