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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핀치

여름엔 5분 거리도 쉬어가야 해

냉버거

by 심내음

“자기야 OO점으로 오더한거 맞지?”



민재는 비오듯 땀을 흘리며 지친 목소리로 전화기 넘어 아내에게 물었다. 고 3인 민재 딸이 학원 강의 시간 사이에 시간이 별로 없어 빨리 햄버거를 먹는데 혼자 먹게 하기 안스럽다며 민재에게 가서 같이 먹어주고 테이크 아웃으로 햄버거를 가져다 달라고 아내가 부탁했다.



“응 맞아”


“오케이 알았어 이따 버거킹에서 출발할 때 전화할께”



민재는 전화를 끊고 발길을 재촉했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들을때는 최고 기온이 30도라고 했는데 민재는 그것보다 더 더운 것 같이 느껴졌다. 회사 일 때문에 더운 나라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민재는 왠만해서는 더위를 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걷기 시작한지 10분도 안되엇는데 숨이 찼다.



시계를 보았다. 1시 10분. 딸과는 1시 30분에 만나기로 했어서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저기 200미터 전방에 목적지인 버거킹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탁 막혔다. 코에서 불기둥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숨이 탁 막혔다.



‘이러다 죽겠다. 안되겠다’



민재는 주의를 둘러 보고 옆에 보이는 슈퍼 마켓에 무작정 들어갔다.



‘살았다.’


민재는 한숨을 돌렸다. 슈퍼마켓 내부는 에어컨을 짱짱하게 틀고 있었다. 물건을 살 생각은 없었지만 민재는 상품 진열대를 천천히 돌아보며 숨을 골랐다. 조금 에너지가 생기는 듯 했다.



슈퍼마켓을 나와 다시 버거킹을 향헀다. 곧 버거킹 문을 열고 안으로 돌아갔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는 티비를 찾았는데 이상하게 민재가 주문한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주문이 들어 갔다면 화면에 민재 주문번호 '010' 보여야 했다.



“저 제 주문 번호가 안 보여서요”


민재는 카운터에 있는 매니저로 보이는 듯한 여성에게 물었다.


“주문 톡 받으신 것 좀 보여주시겠어요”


민재는 휴대폰을 열어 주문 페이지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 여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민재를 쳐다 보았다.


“손님 이건 XX점에서 주문하신 것 같아요. 여기는 OO점이에요”


“엇 네? XX점이라고요?”



민재는 휴대폰을 다시 확인헀다. 그 주문 페이지에는 대상 점포가 'OO점'이 아닌 'XX점'이라고 써있었다.



‘아 그렇게 OO점인지 확인하고 주문해 달라고 했었는데…’


민재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망스러웠다. 이 폭염을 뚫고 다시 XX점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XX 점으로 가는 길도 너무 더웠다. 절반쯤 갔을까 정신이 다시 아득해 질 때 마침 눈에 보이는 동네 마트를 다시 들어 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민재를 살렸다. 멍했던 머리속에 이 더위를 뚫고 햄버거를 픽업하러 나온 본연의 미션이 다시 떠올랐다.



마트를 나와 버거킹으로 남은 힘을 짜내서 걸어 갔다. 출입문을 열자 카운터에 종이 봉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봉투 겉면에 “주문번호 - 010”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탓인지 햄버거 봉투는 춥고 외로워 보였다. 세게 틀어 있던 에어컨 탓은 분명 아니었다.



햄버거 봉투를 집어들고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 왔다. 민재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아내가 햄버그를 같이 먹자고 해서 식탁에 앉아 와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싸늘하게 식은 고기가 혀를 통해 느껴졌다. 냉버거였다. 민재는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음식을 차갑게 먹는 것을 정말 싫어 했다. 배가 고파 와퍼를 밀어 넣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건전지를 갈아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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