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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 Feb 22. 2022

[D+472] 삿포로에 살면서 느낀 장점 10가지.上

삿포로 이주 후, 1년이 조금 지난 오늘까지 좋았던 점을 정리해보자.

12년 전 첫 홋카이도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이후, 머릿속에 줄곧 남아있었던 모습은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풍경, 순도 100%의 파란색 하늘, 조금만 불어버리면 터질 것만 같은 뭉게구름이었다.


사방이 빌딩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는 제법 훌륭한 쇼크였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참이나 빠져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묘사되어 있는 일각수가 살고 있는 세계의 끝이라는 곳이 어쩌면 이곳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애니메이션 [하이바네 연맹]에서 묘사되고 있는 죽은 후 잠시 들리는 마을의 모습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곳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세계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 그리던 삿포로의 이미지와 이제는 소속이 되어 살고 있는 입장에서의 삿포로의 이미지는 현실이라는 의미와 뒤섞여 조금은 거리가 벌어진 느낌은 있지만, 여전히 이곳은 나에게 있어서 참 살기 좋은 마을이다.


지난번은 살면서 불편하거나 단점 같은 네거티브 한 면을 적어 내렸다면, 이번에는 매력과 장점 같은 포지티브 한 내용에 대해서 적어내려 보자.


노파심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추운 것보다 더운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며, 더운 공기 속의 시원함보다는 추운 공기 속의 따뜻함을 좋아한다. 맑은 날도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을 더 좋아하며, 북적한 대도시의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중소도시의 수수함을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대중적인 것보다는 유니크하거나 독특함을 좋아하는 성향이 골라낸 매력이나 장점이므로 일반적인 기준과는 다를 수 있으니, 단지 재미로 가볍게 읽어 내려가 보자.


1. 음식


아마 홋카이도의 장점을 말해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을 꼽는다.

내 입맛은 그리 수준이 높은 편이 아니라 그냥 맛있다 / 맛없다의 이차 원식의 감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의 감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뢰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을 한다.


일본에 와서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음식이 맛있었고 각 지방마다의 특색이 있어서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다만 한국에 살면서 적응된 소스 중심의 식문화에서 재료 중심의 음식으로 식문화가 변하면서 음식의 맛있음의 기준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 깍두기를 먹을 때는 무에 묻어있는 양념을 기준으로 맛있음을 판단했다면, 이제는 무의 맛에 여부에 따라 맛있음의 판단이 자연스럽게 갈리는 부분을 보면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부터 음식 맛의 판단 기준은 소스가 아니라 본재료의 맛을 살리는 여부에 따라 바뀌어버렸다.


삿포로에 이주 후에, 가장 큰 위험한 변화중 하나는 몸무게였다.

동네 스프카레를 시작으로 도대체 말도 안 되는 맛을 감당할 수 없어서 시도 때도 없이 입에 집어넣는 바람에 이사한 지 한 달 만에 10킬로가 쪄버리는 불상사를 맞이했다.


홋카이도는 유명한 재료들이 참 많다.

야채는 체감상 모든 야채가 맛있다. 

한국에서 야채를 1을 먹었다면, 일본에 와서는 4를 먹기 시작했고, 홋카이도에 와서는 20 정도를 먹고 있다.

그렇게 유명한 감자나 호박, 옥수수, 고구마들은 그냥 물에 넣고 삶아서 아무것도 조리하지 않고 먹어도 맛있고, 아스파라거스는 그냥 뜨거운 기름에 담갔다 빼기만 해서 먹어도 맛이 기가 막히다.


어렸을 때는 어떤 보상을 줘야지만 먹었던 야채를 이제는 찾아가서 먹고 다니니 이걸 본 우리 엄마는 기가 찰 노릇일 테다.


홋카이도의 야채의 맛을 극대화한 음식 중 하나가 스프카레이다. 삿포로의 소울푸드


또한 밀가루, 콩이 유명해서 그걸로 이용해 만든 음식들도 모두 맛있다.

도쿄에도 유명한 라멘집이나 교자 집에는 [홋카이도산 밀가루 사용!]이라는 문구를 내걸 정도로 홋카이도의 밀가루는 제법 유명하다.

또한 콩도 유명해서 일본에서 가장 비싼 낫토인 아키타의 [2대째 후쿠지로(二代目福治郎)]라는 낫토도 홋카이도산 콩을 사용하고 있다. (https://www.securite.jp/store/detail/483)


야채뿐 아니라 고기도 맛있어서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할 때나 야키니쿠를 할 때도 자주 애용한다.

특히 아사히카와에서 사육하는 이모부타(芋豚)는 사료를 옥수수가 주가 되는 전분이 많은 사료를 먹어 키운 돼지인데, 이게 또 제법 걸작이다.

냄새는 1도 나지 않고 탱탱한 살이 일품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삼겹살 파티 때는 항상 먹는 이모부타!


쌀 또한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유메피리카(ゆめぴりか)와 나나츠보시(ななつぼし)가 있다.


https://www.furusato-tax.jp/feature/a/comparison_rice


유메피리카는 어느 정도 탱글탱글한 가운데 떡처럼 쫄깃해서 항상 사 먹는 주식이며, 나나츠보시의 경우는 꼬들꼬들한 느낌이 좋아서 종종 사 먹는 쌀이다. 특히 나나츠보시는 식어도 맛있는 밥으로 유명해서 맛있는 오니기리(주먹밥)로는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다.


오호츠크해와 태평양에 둘러싸인 섬이기 때문에 해산물은 굳이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작년 연말에 먹었던 홋카이도 해산물로만 만든 오세치 (3단 중 하나)



2. 여름


삿포로의 여름은 덥지 않다는 이미지가 많다.

삿포로도 여름은 덥다.

점점 더워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옛날 기록을 봐도 더운 날은 더웠다.

12년 전 첫 여행을 했을 때도 9월이었음에도 의외로 더웠던 기억이 났었으니까.


다만 삿포로의 여름은 우리가 겪었던 여름과 많이 다르다.

따갑도록 강한 햇빛과 사방에서 건물과 아스팔트로 반사되어 나온 열기가 특징인 서울의 여름, 

숨이 막힐 정도로 공기 중에 가득한 물기를 품은 찌는듯한 열기가 특징인 도쿄의 여름을 모두 겪어본 나에게 있어 삿포로의 여름은 아주 많이 달랐다.

생각 외로 쾌적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도시가 삿포로라고 생각을 한다.


우선 짧다.

작년의 경험을 되돌이켜보면, 7월 중순부터 제법 더워지기 시작해서 7월 말 8월 초에 피크를 찍고 8월 말부터 급격히 서늘해지는 리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여름다운 여름의 기간 전부다.


https://www.google.co.kr/search?q=%E6%9C%AD%E5%B9%8C%E6%B0%97%E6%B8%A9%E6%8E%A8%E7%A7%BB


작년의 경우 삿포로 관측 사상 가장 더운 날이 많은 여름이었지만 30도가 넘는 날이 1년에 27일을 기록했다.

최고기온이 35도가 넘는 猛烈日는 3일, 최고기온 30도가 넘는 真夏日는 24일이었다. 

30도가 넘는 날은 7월 8월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후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는 경향을 보인다.


http://www.tvg.ne.jp/george/weather/gw_stat_temp.html?city=sapporo


삿포로의 여름 특징의 또 하나는 습기가 없다는 부분이다.

따라서 30도가 넘는 여름 날씨에도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 있으면 가을처럼 시원해지며, 열대야가 거의 없다.

집에서 양쪽으로 창문만 열어놔도 밖이 30도가 넘는 기온에서도 거의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덕분에 작년 여름 동안 에어컨을 작동한 날은 4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이 작동한 날의 위의 표에서 기록된 열대야 4일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최근 삿포로도 평균기온이 점점 올라가기 때문에 신축 건물에는 에어컨들이 기본으로 설치되기 시작하는 추세이지만, 기본적으로 홋카이도의 집에는 기본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하는 경우가 적다고 한다.

대신 난로가 기본적으로 설치된다.


삿포로의 여름이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비가 많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마가 없다.

더불어 태풍도 잘 오지 않는다. 

물론 가끔 올 때는 쑥대밭이 되기도 한다.

일본 본토를 다 쓸고 태평양을 지나서 북쪽까지 견디고 온 녀석이라면 여간 쎈 녀석이 아닐 테니까.

치바 카시와에서 살았던 당시에는 매년 여름마다 지나가는 태풍과 장마로 제법 고생을 했지만 이곳의 여름은 그에 비하면 참 평화로운 여름을 보낼 수 있다.


다만 의외로 건조한 날씨가 많아 여름에 가습기를 틀어놓는 요상한 경험도 하기도 한다.


3. 바퀴벌레

일본의 바퀴벌레는.

몬스터다.


바퀴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고, 다행히 나 역시 정상적으로 싫어한다.

하지만.

일본의 바퀴벌레를 본 이후로 한국의 바퀴벌레는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싫은 건 싫다.)

일본에서 바퀴벌레를 본 건 2번이다.

처음 일본에 집을 구하고 와서 봤던 1마리와, 도쿄 신주쿠 거리를 걷다고 태연하게 걸어가는 1마리였다.

두 번의 경우 처음 봤을 때는 그 검은 생명체가 바퀴벌레가 아닌 쥐인 줄로만 알았다.


그 정도로 크다.

뻥을 좀 많이 섞어서.

손바닥 만하다.

그냥. 처음 봤을 때 체감 크기는 정말 그랬다..


집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한 이후로 바퀴벌레 퇴치약 1만 엔(10만 원) 어치를 사 와서 온 집안에 다 깔아놓은 이후에는 삿포로로 이사올 때까지 본 적은 없었지만, 일본의 바퀴벌레는 너무 큰 괴생명체이다.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커서 퇴치약으로 10만 원을 썼어도 아깝지가 않았으니까.


그런 몬스터가 홋카이도에는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하기에는 조금 위생이 좋지 않은 식당 뒤편이나 쓰레기 처리장 등에는 존재하기 때문에 [전혀 없다]가 아닌 [거의 없다]라고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집에는 바퀴벌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생존력이 높은 바퀴벌레도 추운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 가끔 홋카이도 출신 젊은 친구들은 바퀴벌레를 보는걸 버킷리스트에 적어놓은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덧붙여 쥐도 거의 없다고 하니,


정말 행복한 마을이다. 이곳은.


4.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


서울의 사계절은.

보..ㅁ여~~~~~름가ㅇ.겨~울 의 느낌이다.


도쿄의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ㄱ ㅕ..  의 느낌이다.


삿포로의 사계절은.

봄 ㅇ ㅕ.ㄹ 가을 겨~~~~~~~~~~~~울 의 느낌이다.


서울에 살았을 땐, 봄과 가을이 너무 짧은 느낌인 반면 여름이 참 기억에 오래 남도록 덥고, 겨울도 못지않게 추워서 비교적 긴 느낌을 받았다.

도쿄의 경우엔 봄과 가을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했다. 다만 여름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참 기억에 오래 남도록 습하고 텁텁한 느낌이다. 겨울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짧다. 아니 겨울답지 않다. 아니. 겨울에 집에 있으면 겨울스럽긴 하다. (겨울의 관동지방의 집은 밖보다 안이 더 춥거든요.)


삿포로는 1년 중 1/3은 겨울이다. 11월부터 추워지기 시작해서 4월까지 춥고 심지어 5월에도 눈이 오는 날이 있으니 순간 방심하면 1년의 절반이 겨울철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이다.

긴 겨울이기 때문에 삿포로의 봄은 제법 반갑고 길게 느껴진다. 점점 더워져서 여름이 왔나 싶은 순간 주위의 산들이 점점 주홍빛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는 마을인 삿포로는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삿포로의 봄은 다른 지역의 봄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얼어붙었던 대지에 새싹이 피어나는 그런 느낌이 아닌 그동안 쌓여있던 눈들이 녹아 흙탕물이 주변에 산재하는 그런 풍경의 모습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삿포로 여행을 준비할 때는 3~4월을 피해서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지붕에 잔뜩 쌓여있는 눈들이 녹으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이 빈번하기 때문에 종종 사망사고가 날 정도로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삿포로의 봄


몇 개월 동안 잠자고 있던 눈들이 모두 녹을 때쯤 4월이 되면 여느 지방의 봄처럼 삿포로도 따뜻한 초록의 모습을 갖출 준비를 시작한다.

이미 남쪽의 본토 지역들은 만개한 사쿠라로 인해 하나미(花見:벚꽃 등을 감상하면서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는 의식? 습관? - 도시락을 싸들고 벚꽃이 만개한 공원에 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관례)를 모두 끝내고 있는 상태이지만 삿포로는 4월 중순이나 말부터 시작하게 된다.


https://n-kishou.com/corp/news-contents/sakura/


작년에는 5월이 돼서야 만개를 했었는데 올해는 3일 정도 당겨져서 4월 28일쯤 만개를 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비교적 남쪽에 있는 하코다테는 아마 4월 20일경에 만개를 할 듯 보인다. 하코다테의 사쿠라가 규모도 크고 참 이쁘다.


삿포로 교육 문화 회관 앞에도 큰 벚꽃나무가 있고
공원에도 여기저기 만개를 시작한다. : 나카지마 공원

삿포로의 여름


6월 말, 7월 초가 되어도 여름의 기분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뉴스에서는 오키나와, 후쿠오카, 도쿄를 비롯해서 남쪽 지방에는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고, 어디 지방에는 벌써 30도에 육박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지만, 이곳은 아직 반팔을 입고 다니기에는 쌀쌀한 느낌이 든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산들은 이제 무성한 초록빛으로 둘러싸여 있고.


해도 길어지기 시작한다.
사츠애키 가든 테라스

삿포로의 여름은 맥주축제의 기간이었다.

여기저기에 비어가든 테라스가 준비되어 그냥 들어가서 맥주 한잔 마시며 아무 데나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한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전부 열리지는 못했지만 작년 여름에는 부분적으로 제한된 환경에서 진행되었다.

밀집지역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공간을 넓게 띄어서 운영하는 게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특히 오오도리 공원에 있는 시계탑 아래에서 하는 비어가든은 징기스칸을 구워 먹으면서 마실수 있으니 나중에 여행이 풀리면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2022년 삿포로 비어가든 스케줄 표 : 일어판 https://johnny88.net/beer-garden-sapporo/)


삿포로도 한여름의 기간 동안에는 35도가 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일주일 내내 30도를 넘기는 기간도 존재한다. 그래도 비교적 삿포로는 북해도 내에서 날씨의 기복이 온화한 편이다.

치토세나 아사히카와, 키타미등의 지역은 여름엔 40도 가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고 여름엔 영하 20도를 넘기는 경우도 자주 보일 정도로 기복이 심한 지역도 존재한다.


홋카이도 여름도 제법 여름답기 때문에 바닷가에 가서 해수욕도 많이 하고 해변가에서 바비큐를 자주 해 먹는다.

한여름에 바닷가를 끼고 차를 타고 지나가면 해변길을 따라 바비큐를 나란히 줄지어서 구워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삿포로의 가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가을이 왔다.

8월의 산을 넘으면 공기 중에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조금은 더운 기운을 머금고 있던 공기들은 어느샌가 북쪽에서 불어온 찬바람과 뒤섞여 딱 기분 좋은 느낌의 온도를 가져다준다.

일본의 가을 단풍은 교토가 단연 으뜸으로 치고 있지만 인파가 싫거나 단풍 절정의 모습을 빨리 느끼고 싶다면 홋카이도로 오면 된다.

봄의 사쿠라의 만개 시기가 다른 지역보다 늦은 홋카이도이지만 단풍만큼은 다른 지역보다 한 박자 빠르게 가지고 온다.

일반적으로 10월 중순에서 11월 하순, 또는 12월 초순까지가 단풍 시기라면, 홋카이도는 9월 중순에서 10월 하순경이 단풍의 절정 시기이다.


조잔케이나 하코다테 등의 단풍이 제법 유명하긴 하지만 삿포로 시내에서도 충분히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삿포로 가장 중심지역에 있는 오오도리 공원에만 가도 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심을 하게 되면.


2021년 10월 17일 당시 갑자기 쏟아지던 눈을 만났을 때.

단풍과 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삿포로의 겨울


삿포로는 눈의 도시, 겨울의 도시로 많이 불린다.

그 정도로 눈도 많이 오고 겨울의 기간도 꽤 긴 편이다.

첫 이주를 했던 2020년 시즌의 겨울은 눈이 관측 사상 2번째로 눈이 많이 오지 않았던 시기였음에도 내가 경험했던 눈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은하철도 999의 첫 장면에 나오는 것처럼 철이와 그의 어머니가 눈바람을 뚫고 999호를 타기 위해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 나오는 눈보라와 전혀 다름없는 눈보라가 삿포로의 겨울에는 종종 불어온다.


특히나 올해(2021년 시즌)는 하루 강설량으로써는 관측 사상 최고량을 찍을 정도로 눈이 많이 오고 있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점에도 이곳은 블리자드가 와서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삿포로에는 태풍이 잘 오지 않는다고 언급을 했었지만, 

반대로 홋카이도에는 겨울에 칸레우즈(寒冷渦:한랭 소용돌이)라고 해서 태풍과 거의 흡사한 저기압이 훑고 지나가는 경우가 한 시즌에 2~3회 이상 발생한다.


상단 오른쪽에 보이는 소용돌이가 칸레우즈라고 한다.


이 저기압은 태풍하고 거의 비슷해서 바람도 태풍과 거의 동일하게 불지만, 비대신 눈을 쏟아낸다.

고글을 써야 할 정도로 얼굴을 때려대고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시점 (2022년 2월 22일)의 새벽에 삿포로에 쏟아진 블리자드의 모습을 한 일본인 친구가 트위터에 올린 모습을 보면 눈이 많이 내린다는 기준이 바뀌게 될 것이다.


https://twitter.com/keionoteio/status/1495774732138184706

위의 트위터에 적어놓은 내용이 참 적절하다.

現在の札幌。 雪がえげつない。 まるで滝のよう。
현재의 삿포로. 눈이 쩔어(표준 해석은 지독해). 마치 폭포 같아.
2021년 12월 17일 눈다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5센티 정도 쌓인 듯싶다. 올해는 첫눈이 많이 늦었다.


2022년 1월 6일 눈이 제법 쌓였다. 20센티 정도 쌓인 모양이다. 아직 밖에 나갈 수 있어. 
2022년 1월 12일 화단의 아랫부분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다. 이젠 발코니에 나갈 수가 없어.
2022년 2월 3일 눈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80센티 정도 쌓였다.
2022년 2월 6일 화단의 존재가 사라졌다. 발코니 난간을 넘어 이제 눈이 넘치고 있다.
어디까지 쌓일 생각인가 자네.

재난 문자가 날아오고 뉴스에서는 교통사고나 운행정보 등을 다루면서 호들갑을 떠는데.

정작 동네 주민들은 의외로 평온하다.

우버이츠(음식 배달)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유유하게 눈길을 달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창문을 열어보니 뒷 공원에서는 삐약삐약 거리는 꼬맹이들의 눈썰매 파티가 시작되었다.


꼬마가 있는 가정집에는 저런 썰매를 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영락없이 눈이 내리면 이 집 저 집에서 저 썰매를 들고 나와 언덕을 타고 내려가며 삐약삐약 거린다.


삿포로의 겨울은 서울의 겨울보다 체감상 춥지 않았다.

당연히 삿포로의 집은 치바의 집보다 오히려 따듯했고, 삿포로에 거대한 지하도로 덕분에 길거리의 체감 온도도 그다지 낮지 않다. 오히려 잔뜩 끼어 입고 가면 더울 정도다.

삿포로의 최저 기온은 서울의 최저기온보다 낮은 경우도 드물지만 대신 최고 기온이 서울이 최고기온보다 높지 않다.

다만 서울의 겨울기간보다 1개월에서 2개월 정도 더 길다.


사실 겨울의 삿포로는 폭설이나 교통상황만 안정이 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중지가 되었지만 오오도리공원에서는 눈으로 조각을 만들어 전시하는 유키마츠리가 매년 열리고 있고, 버스나 열차를 타고 삿포로 밖을 나가면 얼음 조각으로 하나의 마을을 만들어놓는 유빙마츠리, 쇄빙선을 타고 러시아로부터 흘러나온 빙하를 깨면서 지나가는 경험도 할 수 있는 등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가볍게 적기에는 부족한 게 너무나 많다.


삿포로의 겨울이 임팩트가 크긴 하지만 삿포로는 눈만 있는 곳이 아닌 4계절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자연과 함께 구성되어 있는 도시이므로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으며, 그 계절에 맞는 여러 이벤트를 열어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너무나 신이 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신이 난다.




삿포로에 지내며 느꼈던 좋았던 점들을 되돌아보며 10가지로 추려 적어보려 했습니다만, 

너무도 길어져서 4가지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0가지를 이 글에 가득 채우기에는 장편 소설이 되어버릴 것 같아 과감히 끊고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몇 편으로 나누어 적어도 모자를 홋카이도의 음식들과 재료들.

평소에 살면서 느꼈던 속도감과는 다른 템포의 계절 변화.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했던 날씨 변화들.

그런 계절에 맞춰서 도시를 꾸미는 삿포로의 모습들.


500일 정도를 살아가면서 질릴 법도 한데 아직 삿포로의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겁습니다.

어느 분에게는 지겹고 고통일지도 모르는 부분들, 어떤 분에게는 따분하고 별것도 없을 것 같은 부분들일지도 모르는 것들이 나에게는 신기한 경험이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반면에 500일 정도를 살면서도 아직 경험하지도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고 도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버킷 리스트에는 이룬 항목보다 새로 추가되는 항목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빨라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조만간 나머지도 정리해서 올리도록 할 생각입니다.

내일은 일본의 공휴일이지만 내일까지 눈보라가 계속된다고 하니 집콕으로 휴일을 보내야겠습니다.

분명 내일도 뒷 공원에 병아리 같은 꼬맹이들이 눈썰매를 탈 테니 그거나 위에서 구경하면서 보내야겠네요.


한국은 봄의 기운이 살짝 왔다가 다시 동장군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온 변화가 심한 요새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매일매일 즐거운 일들만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저녁 맛있게 드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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