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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Mar 31. 2020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쓸쓸한 유언

장국영 추모 에세이

발 없는 새가 살았다.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몸이 닿은 날은 생애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영화 <아비정전> 중 내레이션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이 죽었다. 세상이 중력처럼 무거웠던지, <아비정전>에서 이야기하던 ‘발 없는 새’처럼 그는 땅 위로 몸을 내려놓았다. 처음엔 지독한 농담인줄 알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이상한 슬픔에 사로잡혔다. 마치 오랜 친구가, 믿었던 형이, 닮고 싶었던 영웅이 사라진 것 같았다.

 

홍콩영화의 추억

80년대를 관통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던 나는 겁도 없고 의식도 없었다. 괴괴한 시간 속, 그 시절이 얼마나 고약하고 잔인했는지 알지도 못했다. 주말 내내 TV에서 중계하는 프로야구를 보았고, 친구들과 몰래 찾은 변두리 재개봉관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인영화들을 찾아 다녔다. 그저 그거면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친구들과 <영웅본색>이라는 영화를 만났다.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한 이 영화는 딱히 갈 곳도, 쉴 곳도 없는 아이들의 아지트였던 재개봉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재상영과 재관람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 최초의 컬트영화가 되었다. 바바리코트와 삐딱하게 깨문 성냥,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멋쟁이 형님 주윤발은 그 시대 우리의 영웅이며 하나의 지향점이었다.

<영웅본색>을 필두로 홍콩 느와르라 불리는 마피아 영화의 득세는 도무지 둘러봐도 영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하고 위장된 한국사회의 현실과 맞아 떨어졌다.  의리로 목숨까지 바치는 형님들의 모습은 어찌나 멋있던지. 또 <첩혈쌍웅>의 쌍권총과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총격 장면은 얼마나 황홀했던지.

장국영과 왕조현의 애처로운 로맨스 <천녀유혼> 시리즈는 소녀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고, 양자경의 <예스 마담> 시리즈도 여성 액션 영화의 통쾌함을 안겨주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마피아 자본으로 굴러가던 영화시장은 당연히 싸구려 아류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비슷한 영화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형님들의 의리를 그리던 홍콩 느와르는 청바지와 오토바이로 기억되는 유덕화의 <열혈남아>와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대명사가 된 오천련의 <천장지구>로 자리를 옮겨 앉다가 신드롬을 일으켰던 <지존무상>과 도박 영화에 발 빠르게 동승한 왕정과 주성치의 코미디 <도성> 시리즈를 끝으로 퇴락하기 시작했다.


기억상실, 시대의 몰락

홍콩 반환을 앞둔 정체성의 상실과 우울한 기류를 가장 먼저 포착해낸 왕가위 감독의 1990년 <아비정전>은 극장개봉 당시 너무나 재미없다며 환불소동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발 없는 새 같은 삶을 허무한 표정에 실어 감각적이면서도 나른하게 그려낸 이 영화를 둘러싼 소동은 그동안 우리가 홍콩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왕가위의 등장과 함께 80년대를 주름잡았던 홍콩 느와르도 스르륵 사라졌다.  

서극 감독과 임청하가 <동방불패>로 나타나면서 다시 한 번 홍콩 영화는 무협 장르로 부활했다. 아름답지만 눈에 띄는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는 30대 후반의 임청하는 매트로 섹슈얼적인 이미지로 남녀를 동시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발 빠르고 파급력이 높은 홍콩영화계는 다시 수많은 아류를 재생산하면서 일순간에 무협영화의 불씨를 꺼뜨리는 수순을 밟았다.

90년대, IMF를 거쳐 사상 초유의 불경기를 맞은 우리 세대는 요상하게 과거에 집착하는 시간들을 살았다. 힘든 현실을 위안하는 방법으로 세상이 복고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달짝지근한 과거는 마치 구름 마냥 폭신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제법 뛰어들기 좋아 보였다. 게다가 기대에 비해 딱히 달라지지 않은 21세기의 시간은 미래보다 과거에 가까웠다.


그렇게 80년대의 생생하고 아팠던 시대를 낭만과 복고의 기억상실로 속여 사는 동안, 장국영이 죽었다 했다. 2003년 당시 사스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한 대부분 스타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보였다. 얼굴을 가린 홍콩 최고 배우들 사이에서 치러진 장국영의 장례식은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묵도이며 동시에 쓸쓸한 유언 같아 보였다. 나의 80년대가 송두리째 찢어져 버린 것 같았다. 덜 자란 시간을 응원해 주던 영웅을 털어내면서 끊어진 시간들이 엉성한 매듭으로 남았다. 그래서 4월이 되면, 장국영이 생각나면, 문득 잘 이어지지 않은 그 시절이 아려 슬퍼진다.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9년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제3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 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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