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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pr 06. 2018

당신,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고 싶으신가요?

우리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매번 하는 말이 있다.


"싸이는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니까 절대로 먼저 만지면 안 돼. 특히 머리는 건드리지 마~ 

행복이는 큰 소리로 짖으면서 두 발을 번쩍 들고 너한테 뛰어오를 거야. 너무너무 좋아서 그런 거니까 절대 놀라지 말고. 머리를 만져주거나 손을 잡아줘. 그러면 좀 진정될 거야."


지인들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행복이를 만나면 대개 반응이 비슷하다. 행복이한테 후욱~ 빠져든다.ㅎㅎ 

우렁찬 목소리, 생각보다 큰 덩치 때문에 놀라는 것은 잠시 잠깐. 순진무구 멍한 표정에 반갑다고 손을 자꾸 내미는(손을 제발 잡아 달라는 거다), '당신이 좋아요'라며 열렬히 꼬리 치는(저 꼬리에 맞으면 진.짜.로 아프다) 행복이에게 반하기 마련인 것이다. 몇 시간을 같이 있다 보면 행복이에게 흠뻑 빠져서 '나도 골든 리트리버를 키워보고 싶다'거나, 혹은 '나도 골든 리트리버를 키워보고 싶었다'라고 말하곤 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 개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 골든 리트리버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것 같다. 아마도 이 품종이 순하고 착하며 인내심 강하고 똑똑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려인이 되기 이전의 내가 골든 리트리버에 대해 저런 '로망' 내지는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이때만 해도 크면 점잖은(?) 강아지가 되려니 했었다ㅎㅎ

우리 행복이가 '순하고 착하고 인내심 강하고 똑똑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새삼스럽게 우리 행복이가 '인내심은 개뿔, 멍청함이 오히려 매력'인 아이라는 것을 어필하려는 것은 아니다.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그것도 새끼 때부터) 그저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답지 않은 충고를 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한 7~8개월쯤 됐을 때일까? 저맘때부터 서서히 파괴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첫 번째, 골든 리트리버는 저지레(물고 뜯고 씹고)가 장난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 리트리버가 그렇다.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된 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략 15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정말 저지레가 장난이 아니었다. 저지레가 심하다고 알려진 '비글'이나 '코카 스파니엘'을 3대 악마견이라고 부른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단언할 수 없지만 저 악마견들의 저지레도 리트리버를 쉬이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엄연한 체급 차이에서 오는 저지레 '규모'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행복이는 이미 6개월 때에 20킬로를 찍었고, 다 자란 후에는 최고 38킬로까지 나갔던 아이다.(물론 지금은 다이어트를 통해 29킬로가 되었다) 비글이나 코카가 몸무게가 나가봤자 얼마나 나가겠는가. 20킬로가 넘는 리트리버의 만행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저 정도 저지레는 양반에 속하는 편이지요 ㅎㅎ 저기 벽지 뜯어 놓은 거 보이시죠?

휴지나 책, 신발 같은 걸 물어뜯는 건 저지레 축에도 끼지 못한다. 충격적이었던 것 몇 가지만 요약하자면, 매트리스, 문지방, 놀이방 매트, 벽지, 장판, 방충망 정도가 되겠다. 도대체 손 들어갈 틈 없는 벽지나 가위로도 자르기 힘든 두꺼운 놀이방 매트는 어떻게 찢어발길(?) 수 있는 건지 나도 참 궁금하다. 나무 긁어먹는 걸 좋아해서 성한 가구가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전셋집의 문지방을 갈아먹어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든 사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식탁 다리를 긁어먹어 식탁을 주저앉혔다는 리트리버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있다). 또 방충망은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뚫는 걸까. 현장을 목격한 적이 별로 없는 나는 그저 궁금하고 또 궁금할 뿐이다.


놀이방매트를 찢어놓은 사진을 찾았어요.

두 번째, 털이 장난 아니게 빠진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개나 고양이가 털이 빠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의 나는 '털 빠짐이 문제가 될 거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게 무식했던 셈인데, 여하튼 '털 빠짐'에 따른 불편함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리트리버만 털이 많이 빠지는 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가 개보다 더 털이 많이 빠지고, 개들 중에서도 털이 유난히 빠지는 몇몇 종들이 있다. 리트리버의 털 빠짐이 반려인을 괴롭게 하는 건, 당연하게도 '사이즈' 때문이다. 우리 싸이도 털이 많이 빠지는 편인데, 행복이한테 댈 바가 아니다. 몸집이 무려 5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시라. 털 많이 빠지는 6킬로짜리 강아지를 다섯 마리 키우고 있는 거나 매한가지인 거다.


그나마 털이 덜 빠지게 하려면 매일매일 빗질을 해줘야 한답니다. 행복이 털로 솜틀어서 베게 만들어도 될 것 같아요 ㅋㅋ

그래서 우리 집 인테리어는 철저하게 '효능' 중심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이의 저지레와 똥오줌, 털 빠짐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가 컨셉인 셈이다(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행복이가 배변을 잘 못 가린다). 얼마 전 오줌 못 가리는 고양이까지 한 마리 추가되었으니, 더더욱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단속하는 수밖에 없다. 털 빠짐에 대해서는 '득도'의 경지에 올라 이미 다 포기한 지 오래다. 맨 처음 한 일은 집에서 입는 옷과 속옷 중에 어두운 색깔의 옷은 모두 다 버린 일. 집에서는 오로지 밝은 색 옷만 입는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내 눈에만 털이 안 보이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매일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주말에 청소할 때마다 돌돌이로 털 떼느라 힘든 것도 이제 다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단 한 가지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은, 잠잘 때 입 속으로 털이 들어와서 깨는 일이다. 아, 정말 이럴 땐 개(?) 짜증 나긴 한다.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행복이 모습이에요^^ 

마지막으로, 하나 추가하자면 많이 먹고, 또 그만큼 많이 싼다.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 등치에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대형견을 집 안에서 키운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래서일까. 의외로 대개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골든 리트리버도 유기되는 일이 잦다. 나처럼, '순한 눈망울, 귀여운 얼굴'에 매료되어 덜컥 들였다가, 뒷감당이 힘들어지니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동물과 함께 한다는 건, '길들이고 책임지는 것'의 의미를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이 동물과 함께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이다. 반려동물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의 편의에서 동물들을 들인다는 이야기다. 내 결정으로 선택한 일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골든 리트리버의 '좋아 보이는 면'만 보고 혹(?)했던 나는, 행복이와 육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개(?) 고생 끝에 철이 제대로 들었다. 어린 왕자 이야기에 나오는 '길들이고 책임지는 것'의 의미를 행복이와의 관계를 통해서 배워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참 행복이스런 사진이에요 ㅎㅎ

아무리 몸이 고되도 행복이를 보고 있으면 힘든 줄 모르겠고, 밖에서 힘든 일이 있었어도 행복이의 눈망울을 보면 다 별일 아닌 것이 된다. 행복이 눈 속의 작은 '소우주'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행복이와 함께 하기 전에는 결코 몰랐던 새로운 세계다. 나는 이제 행복이가 골든리트리버라서가 아니라, 그저 나의, 우리의 '행복이'라서 그래서 좋다. 참 좋다. 


행복이 뭐 별 거 있나요? 싸복이남매와 뭉치, 이렇게 우리 넷이 함께 있을 때 이게 바로 '소확행'이지요^^

프롤로그: 글을 써 놓고 드는 생각, 우리 행복이가 골든 리트리버라서 저지레가 심했던 게 아니라, 그저 '행복이'여서, 행복이가 원래 '그런 애=저지레가 심한 애'라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우리 행복이는 원래가 그런 애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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