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책에 둘러쌓여 사는 직업이지만, 새로운 지역에 가면 작은 책방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어이 작은 책방을 일정 사이에 비집어 넣는다. 작은 책방은 사장님의 취향이 이곳저곳 묻어있는 카페같이, 아니 그 보다 더 세밀한 취향을 담고 있어서인지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저절로 끓어오른다. 책방 지기는 물론 같이 간 친구의 취향, 그 너머의 우주까지도 짐작해보는 작은 창구 같다. 책을 매개로 이야기거리가 생기는 것. 한 달에 빠듯하게 한 권 읽을 때도 있는 불량 사서면서-사실 불량 사서라서 더 할 만한 생각이다-책을 매개로 이야기하는 것은 꼭 내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듯하여 설렘과 왠지 모를 벅차오름을 느낀다.
그렇지만 늘 정돈된 서가 속에 사는 사람으로서 작은 책방의 미스테리가 있다. 책을 주제별로 모아놓지 않고 어떤 곳은 색깔별로 모아놓기도 하던데. 이걸 내 일터에 적용해본다면... 아마 평생교육이나 독서 프로그램은 손도 못댄 채 매일 책만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간도서처럼 별치(별도의 코너에 비치) 처리 한다 해도, 그 서가 안에서 청구기호대로 놓여있지 않은 책들은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다. (보통 도서관 서가 한칸에 40~60 여권을 꽂을 수 있는데, 5단 서가라 하면 적어도 200권이다. 200권을 번호없이 눈에 예쁜 순으로 꽂아놓는다…? ) 책방 지기 취향대로 한권한권 고르고 자리를 정해준 책이라 쉽게 찾을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책방 손님들은 우연히 만난 운명같은 책을 구입하는거라 책의 배열이 상관 없는걸까. 이미 틀과 규칙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은 무질서 속의 질서와 그 나름의 멋을 알아차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스스로가 삭막하게 느껴진다.
책방 지기의 추천 문구가 붙은 수많은 책들을 보며 부러움도 느낀다. 도바도(도서관by도서관)이지만 우리 도서관은 사서들이 매년 서평을 한두개 정도 써야 한다. 나는 글쓰기를 그나마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대상과 주제가 미리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좋은 책을 골라 서평을 써야하는 일은 역시나 일이 되어 버린다. 고작 10줄짜리 서평을 쓰면서도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적당히 괜찮은 책을 고르고 남들이 읽고 싶게끔 서평을 써 내려가면 내가 나를 속이는 듯 한 느낌도 종종 든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추천글을 쓰는 책방 지기들이 부러워진다.
책과 친한 삶을 사는 것에서 책방 지기들과 동질감을 느낀다. 그 동시에 내가 그 만큼의 깊이를 가질 수 있을지 그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늘 작은 책방을 꿈꾸고 살지만 꿈은 꿈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름다우려나. 문득 책방지기들은 도서관을, 그리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작은 책방을 열지는 않더라도 열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내 취향을 다지고 넓혀보자고, 그렇게 남 몰래 작은 책방과 책방 지기들에 대한 경외심과 애정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