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 memorial wall
템즈 강변을 걸었다.
그날은 런던을 떠나는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싶은 건 역시, 빅벤이었다. 늘 웨스트민스터 브리지에서 올려다보기만 했던 빅벤을 좀 더 좋은 곳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뷰 포인트를 열심히 고민하다 보니 강바람을 거슬러 다리를 끝까지 건넜다. 그렇게 빅벤과 세인트 토마스 병원 사잇길을 걷게 된 것이었다.
빅벤과 국회의사당의 화려함만 바라보며 걷다가 잠시 눈길을 돌리니 왼쪽 벽에 낙서가 빼곡하다.
“이것도 그라피티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벽에 빨간 하트가 끝없이 그려져 있고 하트 안에 글이 쓰여 있다. 아예 낙서를 하라고 벽에 하트를 그려놨나 보다.
영원히 사랑해요.
어머나~ 좋을 때다.
꼭 이런 거 남겨놓는 애들이 헤어지더라.
그런데 유심히 몇 개를 들여다보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
그냥 낙서가 아니다. 다름 아닌
세상을 떠난 이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그건 코로나 추모의 벽 (The national Covid memorial wall)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빅벤이 아닌 추모의 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금세 빨간 하트 안에 채워진 글씨들에 몰입 됐다.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기억할게요.
나의 영웅이자 할아버지.
당신이 너무 그리워요.
사랑이 우리 사이의 거리를 채워줄 거예요.
최고의 남편. 아름다운 영혼.
나의 형이자 첫 번째 친구.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눈을 가늘게 뜨고 벽에 빼곡히 새겨진 하트들을 훑었다. 우리가 견뎌냈던 팬데믹이 강바람에 실려 살갗으로 느껴졌다.
이제 막 학교로 설레는 첫걸음을 내디딘 병아리 같은 초등학교 1학년, 그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이 1년에 채 한 달이 되지 못했던 그때. 확진자가 나오면 신상이 탈탈 털리고 건물이 폐쇄되던 그때가 불현듯 스쳐 지났다. 어린이집에 확진자가 뜨면 아이들을 안고 단체로 검사소로 달려가 울고불고 난리통 속에 코에서 목구멍까지 깊숙이 면봉을 쑤셔 넣던 기억이, 온 가족이 확진되면 집 안에 갇힌 채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 끔찍한 단절 속에서도 현관 문고리에 따뜻한 먹거리를 걸어놓고 가던 고마운 이웃들, 일명 ‘문고리 요정’의 소중함도 새삼 느끼던 그때.
몇 날 며칠을 좁은 집안에 갇혀 아이들과 그림 그리고, 종이 접고, 보드게임 하고, 먹이고, 재우고, 싸우고,
하다 하다 지쳐 아무도 없는 숲 속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잠깐씩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던 날들.
다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시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종료됐다.
그러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상실을 겪었던가.
빨간 하트 하나에 하나, 혹은 둘의 죽음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묘했다.
코로나19 추모의 벽(Covid memorial wall) 앞에서 내가 느낀 건 단순한 ‘슬픔’만은 아니었다. 분명 죽음이 담겨있으니 무겁고 엄숙하고 슬퍼야 하는데 말이다. 어느 담벼락에나 있는 낙서 'xx♡xx', 'xx&xx 다녀감', '2025.6.11. xx가 이곳에 있었음' 과 희한하게 비슷한 결이 느껴졌다. 다른 점은 상실한 이들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뿐이다.
조깅을 하던 사람은 잠시 벽을 응시하다 다시 뛰었고, 나처럼 빅벤 사진을 열심히 찍던 사람들의 눈길도 때때로 머물렀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사실을 기가막히게 표현하고 있었다.
템즈 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엔 관광객들의 들썩임이, 왼쪽엔 벽을 가득 채운 죽음이 있다. 그 둘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다.
길거리 낙서와 다름없는, 딱 그만큼의 무게로 새겨진 죽음. 너무나 가벼운 필체로 천상으로 보내는 메시지.
그런데 그게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핑 돈다. 죽음만 마주한 것이 아니라, 죽음보다 더 큰 사랑을 마주한 느낌이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영웅’으로, 혹은 ‘아름다운 영혼’으로 기억하고 그리워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빅벤을 제치고 나를 압도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