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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Feb 02. 2019

화해와 감동? 난 감독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영화 < 우리 가족 : 라멘 샵 > 리뷰

아버지 카즈오(이하라 츠요시)와, 삼촌, 그리고 카즈오의 아들 마사토(사이토 타쿠미)는, 일본 '다카사키'에서 인기 있는 라멘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자신은 실패한 인생이라며 혼술에 빠져 살던 무뚝뚝한 아버지 카즈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자, 마사토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어린 시절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메이량(구훤)의 일기장과 옛 사진들을 발견한다. 어머니의 고향이자, 자신이 10살까지 살았던 싱가포르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며, 엄마와 수프를 먹으며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는 마사토. 우연히 발견한 외삼촌의 쪽 편지를 보고, 그는 싱가포르로 외삼촌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외삼촌을 만나 엄마가 끓여주던 수프, 바쿠테를 다시 맛보고, 외삼촌에게 그 비법을 배우던 마사토는, 엄마가 일본인 아버지와 결혼했기 때문에 외할머니에게 의절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남편을 잃은 외할머니는, 일본인과 결혼한 딸 메이량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인으로 자란 자신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할머니에게 술김에 찾아가 항의하던 마사토는, 결국 외할머니를 위한 특별한 바쿠테인 '라멘테'를 만들어 드림으로써, 돌아가신 엄마 대신 외할머니와 화해를 하게 된다.



 일본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마사토'


영화는, 주인공 마사토싱가포르 대표 서민 음식인 '바쿠테'를 통해, 추억과 의 힘으로 영화적 갈등을 해결하는, 음식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만, 다른 음식 영화들과 다른 점은, 음식의 유래와 함께, 태평양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그들의 갈등 속에 스며들어 있어, 단순한 음식 영화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역사적 갈등에 대한 답을 찾는 영화로 해석할 여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마사토는 지금의 젊은 일본인들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 일본의 장인정신을 대표하는 듯, 우직하게 연구를 거듭하는 라멘 요리사로 그려지는 그는, 국제사회에서 종종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일본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회적 승인 욕구'가 강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의 그런 모습은,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 마음을 삼촌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생전 처음 보는 외할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 '라멘테'를 완성시키는 과정을 통, 명확히 난다. 또 영화 마지막에는 일본에서 온 삼촌이 '라멘테' 맛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인정하는 모습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자신의 가게에서 함께 식사하는 상상 장면 또한, 마사토가 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사회적 승인 욕구'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다.


또, 영화적 핵심 갈등 속엔,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가였던 일본이 동 아시아 전역에 저질렀던 만행의 역사적 상황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갈등의 양 축을 이루는, 외할머니와 마사토의 입장을 드러내는 영화적 시선 또한, 지금의 동아시아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양상이 느껴진다. 일본의 무자비한 전쟁 만행을 직접 겪었던 외할머니는, 몇십 년이 지나도록 전쟁에서 받은 상처를 잊지 못하고, 일본 사람과 결혼한 딸을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는 구세대이자 동아시아 인의 대표적 인물로 보인다. 또, 일본인 아버지와 싱가포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사토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의 참상을 싱가포르의 역사 전시장에 와서야 알게 되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있냐는 듯, 크게 영향받지 않는, 일본 전후 세대의 생각을 가진 젊은 세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두 사람의 갈등이 크게 부딪히는, 술 취한 마사토가 외할머니에게 항의하는 장면의 대사들은 현대 일본 사회의 신세대가 가진 가치관을 더욱 명확히 보여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엄마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죠?
...
어느 나라 사람인 게 무슨 상관있어요?
...
엄마의 일기엔 슬픔이 가득 차 있어요!
당신 때문에 엄마는 슬픔 속에 죽어갔다구요!
...
나에겐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 대사들의 의미를 찬찬히 살펴보면, 마사토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일본이 벌인 역사적 전쟁 범죄는 개인의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과거 역사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의 행복을 억압하고, 그들의 자식 세대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사는 영화 속에서 두세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 "나에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대사이다. 이 말은 영화 속에서 마사토 자신이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었다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화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할머니에게 마치 엄마의 죽음이 외할머니 탓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상황에 다시 튀어나옴으로써, 자신의 힘든 상황조차 외할머니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특히나 이 장면은, 외할머니가 어머니와 절연한 이유를 듣고,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일제 강점기의 생존기>라는 전쟁 역사 전시회를 마사토 혼자 다녀온 후, 펼쳐지는 장면이다. 일본이 전쟁 중에 벌인 참혹한 일들을 사진과 인터뷰 음성으로 들으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이 얼마나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는가를 알고 난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할머니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모습이나, 역사적 가치관의 변화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술에 취해, 엄마는 아무것도 잘 못 한 게 없는데,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냐는 이야기만 반복하며, 자신과 엄마 아빠의 불행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 모습은, 태평양 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 자체가 (잘못되어 있거나) 전혀 없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은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가 아니라, 원폭에 의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항변하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입장과 똑같은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불 책임을 과 상처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기까지 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용서가 그렇게 쉬운 걸까?


물론, 마사토는 그 후, 자신이 외할머니에게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라멘테'를 만들어 드려 외할머니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외할머니와 마사토는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마음을 열고, 화해와 공감을 나누는 식사를 함께 하게 된다. 마사토는 그 식사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고, 외할머니는 딸 메이량과의 뒤늦은 화해를 하게 된다. 이 식사 장면은, 추억의 음식을 함께 함으로써 대립적 갈등을 보였던 두 사람이 음식으로써 갈등을 해소하는, 음식 영화의 공식과도 같은 클라이맥스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눈물이 날 만큼 그 장면의 정서적 공감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과 불편함이 여전히 남아 있는 장면이 되고 말았다.


물론, 에릭 쿠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싱가포르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마사토가, 싱가포르의 음식인 바쿠테와 일본의 음식인 라멘을 결합시켜, 새로운 음식 '라멘테'를 만들어 냄으로써, 새로운 융합적 세대에 의한 역사적인 화해와 치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영화적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너무 쉽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거지? 마사토가 어른이 되어 찾아오기까지 거의 30년의 시간 동안 용서하지 못했던 딸, 죽었다는 소식에도 돌아보지 않았던 딸, 그리고 그 딸의 아이! 마사토! 그가 외할머니를 위해 만든 추억의 음식이자, 새로운 음식, '라멘테' 를 맛보는 단 한 번의 경험이, 30년 동안이나 용서할 수 없었던 외할머니 마음을  눈 녹듯이 녹일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쉽게 용서할 것을 왜 30년 동안이나 못했었던 것일까? 외할머니의 사연으로 영화적 갈등을 키우기 위해 너무 작위적으로 설정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갈등 해결 방식이 너무 나태한 것은 아니었을까?


거기다 이 클라이맥스는, 이제 역사적 상처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와 함께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 동아시아 국가는 모두 일본의 잔혹한 만행을 잊고, 마사토의 외할머니처럼, 일본의 새로운 세대를 혈육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마치 영화는, 과거의 역사에 연연하는 것은 매우 구시대 적이고, 새로운 세대와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것만이 옳은 길이라고 강조하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며, 만행을 저질렀던 주변 국가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배상하 지도 않았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마사토가 할머니께 사과하고 싶은 이유도,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반성이나, 상처 받은 외할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을 담았다기 보단, 할머니의 마음을 풀어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술 마시고 주정을 부린 무례함에 대한 사과의 마음뿐이었다. (영화 속 어디에도 태평양전쟁에 대한 마사토의 생각이나 역사관은 드러나지 않으며, 그가 보여준 유일한 가치관은, 위에 설명한 대로, 국가가 어떤 일을 벌였건 간에, 개인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는 입장 밖에는 없다. 마사토는 결국 할머니의 마음과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화해의 음식을 만든 것이다.)



난 감독의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난 감독의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역사적 잘못에 대한 인정도,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망언과 도발을 일삼는 현재 일본의 모습을 떠올려도 그렇고, 태평양 전쟁에 대한 상처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외할머니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생각도 없이, 그저 무례했다는 겉치레 예절 문제만을 잘못으로 인식하는 마사토의 태도를 봐서도 그렇다. 핵심 가치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빠져버린, 혈육의 정만 느끼는 용서와 화해는 결코 제대로 된 화해가 될 수 없다. 갈등의 핵심 요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방편적으로 이루어진 화해는, 절대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 없이, 미래를 위한 용서와 화해, 관계 회복을 피해자에게 언급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가해자의 매우 오만하고 염치없는 강자의 논일 뿐인 것이다. 

 

어쩌면, 에릭 쿠 감독은 음식으로 화해하는 영화를 만들기로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적 갈등을 정서적 공감의 힘으로 해결하는 따뜻한 영화를 만들겠다고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단순히 주인공 마사토의 역사의식을 빠뜨리고, 쉽게 갈등을 해결하는 데서 그치는 영화적 설명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잘못을 덮어버리고 싶어 하는 일본이라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고, 상처 받은 동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낡고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며, '밝은 미래를 위해선, 잘잘못 따지지 말고 모두 과거를 잊고 융합적으로 화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이후 세대들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라는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며 협박는, 선전선동 영화를 만들고 만 것이다. 그래서, 난, 오만한 가해자의 논리를 감 화해 내세워 관객들에게 주입시키려는 이 영화의 생각과 가치관에 절대! 동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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