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심상이 있습니다.
복권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이 힘에 부쳐 돌파구를 헤아리던 중, 이것 쳐내고 저것 쳐내고 하다보니 닿은 결론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복권을 사러 갈 수는 없었는데, 당연하게도 복권을 사고 나면 뒤에는 실망할 일만 남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와 같을까. 이와 같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을까? 삑, 삑 바코드 찍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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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처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싱크가 맞지 않는 영상처럼, 지금과 약간 유리되어 살짝 떠있는 듯한 느낌이다. 제1의 심상과 제2의 심상(혹은 제3이나 그 이상의) 사이의 끊임없는 유리. 주로 통제감이나 자기효능감의 상실로 인한 것이겠지.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따라가는 듯한 이 느낌. 아니다, 딸려 다니는 나! 목줄에 딸려 다니다 보면 그 관성을 주체하지 못 해 앞으로 튕겨 나가기도 한다*. 최근 인간의 자유의지를 의심하는 논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것 같더라니. 그렇게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 지금 조금이라도 산다는 느낌을 주는 것에 매몰되곤 했다. 그럴 수록 나는 생활로부터 멀어져 견디지 못할 만큼 나와 내 주변을 방치하는 것이다***.
무어가 그렇게 억울해서! 나는 마음 속 깊이 소리를 질렀다. 무어가 그렇게 억울하냐고. 왜 나는 만족하지 못 하고, 나를 만족시킬 수 없냐고. 그저 조금 자신을 객관화 해서, 조금 주물럭대다 짓씹어낸 글쪽이나 쓰고 마는 것이냐고.... 대체 왜 그러냐고****....
해야할 일들을 산더미처럼, 시선 밖에 모다두고, 끊임없이 불안해 하고, 때를 놓치고, 누군가에게 잘못을 하고, 미움을 받고, 운 좋으면 용서를 받고, 집에 돌아와서 비명을 지르는 대신 위와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고. 아, 정말 모르겠단 말이다.
가장자리에는 딱지가 지고, 가운데는 축축한, 큼지막한 상처에서는 쿰쿰한, 곪은, 미묘하게 계속 맡게 되는 부정적인 냄새가 난다. 쓴 글줄 사이를 허우적대는 동안 내 글에서 그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죽은 세포들의 냄새. 또 무언가 죽은 냄새. 뜯어버리고 다시 긁고 싶은 냄새가....
그래서 결국 복권을 사러 가지는 못 했다. 모두 좋은 밤 되세요.
하지만 글을 썼다. 내일은 조금 다른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어서 백 억씩 벌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팔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겠다. 아, 너무 징그러워요 진짜. 진짜 너무 징그럽지 않아요? 감당하기 참 어렵습니다. 내일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저기도 그렇고 내 방 내 집 내 마음 내 삶 내 행실 내 과거 내 미래 그런 것들을 모두 싹 종량제 봉투에 담고 유기하고 싶습니다. 분리수거 하지 않아서 과태료 10만원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이렇게 딱지를 뜯고 피를 내고 핥기도 하고 염증 냄새를 맡다 보면 조금 기분이 나아져요 글쓰기란 그런 거 같습니다. 내게 글짓기는 무언가 창조적인 일이라기보다는 위와 같은 일 같습니다. 아토피 때문에 몹시도 가려운 내 팔오금을 벅벅,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도록 긁는 일 같고 거기다가 연고를 바르고 로션도 바르고 다시 긁는 일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사랑스럽니다. 그러니까 또 지저분하게 좀 더 보태자면 내가 주인공인 바디호러 영화 같습디다그려. 그 사이에 잠깐 번뜩인 박자감이나, 선득선득하고 끈적이는 장판 같은 생활감 같은 것들이, 아, 약간 만족감을 챙겨줘서 영양실조로 죽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스꽝스럽고 우스웁니다.
혼자 열띠게 후비다가, 내일부터는 노래를 꼬박꼬박 듣기로 해봅니다. 이게 제 아스피린이 되어줄 수 있겠습니다 하고 희망적인 진단도 내려봅니다. 연구도 해 봅니다. 해봅니까? 궁구하지 않고 연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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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는 앞서 가는 차량의 잘못으로 급정거를 할 때면 조수석에 앉은 내가 튕겨 나가지 않도록 오른팔로 내 몸을 막아내곤 했다.
**실제 겪었던 일로 비유를 하자면, 카메라 넉 대를 이용해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최종적으로 1번부터 4번 메모리카드에 남은 영상은 길이도 제각각이고 중간 중간에 휴지마저 있는 것. 나는 그 4채널 시퀀스를 기워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야 했고, 기우는 데만 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그건 끝나는 종류의 일이긴 했구나.
***끊임없는 회피와, 용서 받는 일에 대한 두려움....
****골든 리트리버 강아지가 주인을(혹은 그 너머를) 응시하며 바닥에다 오줌을 싸는 영상이 생각난다. 영상을 찍는 사람을 대체 왜그러냐고 소리치는 그런 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