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제주도 애월 여행(2) /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음악을 들으며 혼자 제주 시내를 걷다 보니 급 코인노래방에 가고 싶어졌다. 비행기 타고 제주까지 와서 코노가 가고 싶다니, 단단히 미쳤다. 그런데도 가야겠다.
나 혼자 하는 여행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채울 수 있는 여행이라서 좋다.
사실 '혼코노 가기'는 정말 나답지만, 나답지 않은 행동이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라 하는데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누가 보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노래 부르는 행위를 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에게 보이기가 민망하달까. 어디든 같이 가는 걸 좋아하는 애인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혼자 다녀온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코노에 아무도 없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적당히 사람이 있어줘야 내 목소리가 묻히기 때문. 쓰고 보니 코노 한 번 가기 정말 까다롭다.
그냥 근처에 있길래 들어간 곳인데 스탠딩 마이크 있는 코노는 또 처음 봤다. 내친김에 그걸 잡고 열창하고 싶었지만 떡하니 머리 위에 CCTV가 보였다.
밖에 분명 아르바이트생이 CCTV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걸 봤는데.. 이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상황.
눈앞의 스탠딩 마이크를 애써 외면하며 구석에 처박혀서 노래를 뽑았다.
구석에 박히니 안전하다는 생각에 고삐가 풀려 열심히 질러댔더니 뒷골이 저릿해지고 얼굴에 마비현상까지 느껴졌다. 너무 아파서 지식인에 쳐봤더니 과도한 복압 상승으로 인한 두피 혈관 확장 가능성이 높단다. 다행히도 죽을병은 아니어서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약 10곡의 노래를 부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알바생에게 인사를 하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다음으로는 구경하고 싶은 서점을 향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어느새 밤이 오고 어둑어둑했다.
길을 걷다가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를 만나서 지도앱까지 켜가며 착하게 이것저것 대답해 드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커피나 저녁을 같이 먹으며 놀자고 한다.
괜찮다고 했더니 나를 따라오겠다던, 호의를 성추행으로 갚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진짜로 나를 따라올까 봐 엄청나게 빨리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큰 길이 나올 때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도망쳤다.
갑자기 무서움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밤의 거리에서 지금까지 내가 알던 제주와는 또 다른 모습의 제주를 보게 된 것이다.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잘해줄 필요가 없다. 명심하자.
서점이고 뭐고 거의 도망치다시피 도착한 식당
수요일의 제주는 이리도 한가하단 말인가. 식당에 손님이 나밖에 없어서 나는 괜스레 난감했다.
이상하게 이런 상황들이 조금은 불편하다. 마치 코인노래방에서 손님이 나밖에 없는 기분과 비슷하달까. 빨리 나 말고 다른 손님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며 메뉴를 주문했다.
놀란 마음 달래려 와인과 당근라구파스타를 시켰다.생각보다 맛은 별로고, 양은 많아서 힘들었다.
이걸 남기자니 또 그렇고 다 먹자니 힘든 상황. 남기면 사장님이 슬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더해진다.
아무래도 이 밤에 숙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가 걱정돼서 더 입맛이 없었던 것 같다.
밤이 이렇게나 무섭게 느껴진 적은 오랜만이었다.
파스타가 느끼했지만 씨 없는 올리브 통조림 덕분에 그나마 힘내서 먹었다.
약간의 개운함을 더해준 바질잎에게도 감사를..
버스를 타고 겨우겨우 애월 숙소에 도착했다.
씻으려고 했는데 온수가 안 나와서 한참을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그냥 사장님께 문의를 했더니 LPG가 다 떨어졌다며 채워주셨다.
"이렇게라도 얼굴 한 번 봤다, 그렇죠?" 라며 반갑게 인사해 주시는 사장님 부부.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경계심 가득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았고 조금은 풀어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내일의 여행은 좀 더 따스하길 바라며.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에 보게 된 풍경
이걸 보니 어제의 두려움은 싹 가셨다.
이제 진짜 나 홀로 제주 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