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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배우 Aug 22. 2024

혼자이고 싶은 여행

혼자 하는 제주도 애월 여행(6) 

여행을 하는 도중에 숙소 사장님에게 친절한 카톡이 오면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정말 따스하고 다정하신 분이지만 나에겐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겨버린 듯한 기분이다배려마저도 하나의 일로 여겨버리는 이유는 이번 여행에서는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갑자기 사주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사주에서 나를 나타내는 일간이 계수(癸水)인데, 계수는 야동자 성향이 강하다. 야동자란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밤에 은밀히 움직이는 사람을 뜻한다. 반박할 수가 없는 게 나는 예전부터 남들 눈에 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뭘 하는 걸 남들이 보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하다. 심지어 공부도 부모님 몰래 하는 스타일이었다.(이건 좀 다른 얘긴가)


어쨌든 사장님이 내일 아침에 직접 배웅해 주신다고 하니 감사하긴 하지만 약간 부담스럽다. 작은 돌덩어리 하나가 가슴속에 얹힌 기분. 야동자처럼 몰래 살금살금 다니고 싶은 게 확실하다. 혼자일 때 자유로운 이런 성향을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쉽게 바뀌진 않는다.


이런 나라서 혼자 하는 여행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다른 의미를 가진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깊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준다. 나에게로 한없이 침잠하며 차분한 시간을 갖는다. 보고 느끼고 쓰고의 반복이다. 이와는 다르게 일행과 함께 하는 여행은 수렴하는 에너지보다 발산하는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된다. 다양한 것들을 보며 감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행복감이 여러 배가 되는 것을 경험을 통해 느꼈다. 같은 것을 보며 "좋다!", "좋다!" 서로 외치다 보면 좋음이 2배, 4배로 불어난다. 애초에 이 두 개의 여행은 목적부터 다르고 얻고자 하는 것도 다르다. 그래서 나는 혼자 하는 여행과 함께 하는 여행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추려고 애쓰는 편이다. 삶의 어떤 시기시기마다 때에 맞는 여행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떠나온 것이었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고 많은 글을 썼다. 끈질기게 노트를 붙잡고 있다 보면 '아, 이런 얘기까지 써야 하나, 별거 아닌데' 하는 검열의 순간과 계속해서 마주치게 된다. 그걸 이겨내고 별 거 아니더라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생각보다 풍부한 표현들로 묘사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이런 말도 할 수 있다고? 하는 놀라운 순간이 나타난다. 그렇게 벌써 노트의 절반을 채웠다.


난 글을 잘 못 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라 쓰지 않고 많이 삼켜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끝까지 적어 내려가다 보면 분명 더 아름다운 문장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지레짐작하고 아예 쓰는 행위조차 시작하지 않은 것 아닐까? 이번 여행에선 떠오르는 사소한 생각들을 구름처럼 흘려보내기보단 지면에 붙잡아두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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