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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15. 2019

나라 이름을 상표로 쓰는 배짱 있는 맥주, 그 맛은?

미소 속의 강인함,그 자존심의 얼굴, 두 번째 - 미얀마 비어

‘처음 술병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정말 천재다.’
술 좋아하는 내가 요즘 같은 편리한 술병 없던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술 항아리를 항상 신줏단지 모시듯 지고 다녔어야 했으리라. 날 좋은 봄날 꽃구경을 가거나 잘 익은 가을날 단풍놀이라도 갈라치면 술 몇 동이는 지고 가야 하는데 얼마나 번잡스럽겠는가? 이리 생각하니 그 동안 분리수거 하며 무겁다고 구박했던 술병들이 위대해 보인다. 이리 말하고 보니 오로지 술을 위해 사는 사람 같아서 참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나라 이름을 상표로 쓰는 배짱 있는 맥주
만일 우리나라 맥주 이름을 ‘대한민국’이나 ‘KOREA’라고 한다면 어땠을까? 보수단체에서는 나라 품격 떨어진다고 난리 칠 테고, 젊은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발상이라고 외면할 게다. 그런데 자기네 나라 이름을 상표로 쓰는 배짱 좋은 맥주가 진짜로 있다. 거기에다 맛도 기가 막히다. 바로 '미얀마 비어' 얘기다.

▲미얀마 비어: 세꼬랑 골목에서 마시던 그때가 그립도다.

미얀마 비어는 미얀마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세계 정상급 맥주다. 실제 미얀마 비어는 벨기에의 '몽드셀렉션(Monde de Selection)'에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금상을 수상했고 2005년 독일에서 개최한 세계맥주 품평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경력을 자랑한다. 미얀마에 가면 곳곳에 미얀마 맥주 광고판을 많이 볼 수 있다. 미얀마를 대표하는 얼굴이 마치 미얀마 비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얀마 사람들도 미얀마 비어 맛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사실 미얀마 비어는 미얀마 군부의 작품이다. 군사정권이 버마에서 미얀마로 국호를 개명하면서 하나의 상징적인 정책으로 미얀마 비어를 출시했다 한다. 미얀마라는 국호를 가장 빠르고 쉽게 국민들 뇌리에 심어 줄 수 있는 방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제 미얀마 비어 병을 보면 'Myanmar'(미얀마)라는 이름만 크게 쓰여 있다. 이렇게 국호를 배짱 좋게 맥주 이름으로 쓰는 나라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현지 가이드 말에 의하면 미얀마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고했다. 여행하면서도 실제 내 눈에는 우리나라처럼 술집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더운 날씨 때문인지, 불교의 신심 때문인지, 경제적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으론 술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미얀마 비어 큰 병 1병 값이1600짯(한화 약 1250원, 19년 9월 기준)이었으니미얀마 물가 기준으로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앞으로 경제적 여건이 나아진다면 우리와 기질이 비슷한사람들이니 지금보다 훨씬 더 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은 미얀마 사람들도 술을 좋아하고, 잘마실 것이라는 내 생각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인레 호수가 있는 냥쉐(Nyaung shwe)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는데 골목 끝에 허름한 술집이 보였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미얀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끌벅적하니미얀마 현지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끌리듯 들어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직접 보니 술을 많이안 마신다는 정보와는 많이 달랐다. 그곳 사람들은 목소리도 컸고 술도 무척 많이 마셨다.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맥'마시듯미얀마 비어와 미얀마 대중 위스키(예전 국산양주 '캡틴큐' '나폴레옹'과 같은 저렴한 위스키)를섞어 마셨다. 호기심에 한번 시도해 봤는데 알코올 도수가 엄청 높아 속이 '쏴~' 했다. 

그때 알았다. 

'아하! 미얀마에도 나 같은 술꾼들이 많구먼'

                                                                                  

▲ 미얀마 비어는 여행 내내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뚜껑 속에 감춰진 행운을 찾아라.

미얀마 비어는 종종 병뚜껑이나 캔 뚜껑에 이벤트를 한다. 5년 전에는 병뚜껑 행사를 하더니 이번 여행 시에는 캔뚜컹 이벤트를(바간에서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했다. 5년 전 처음으로 19번가(세꼬랑) 꼬치 골목에서 옆 테이블 미얀마 청년이 알려줘서 알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5병을 시켰는데 5병을 추가로 받는 행운을 얻었다. 지금도 가끔 병맥주 뚜껑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긁어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이번 여행 때에는 바간 슈퍼에서 캔맥주를 샀더니 캔 뚜껑 행사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숙소에 돌아와 캔 뚜껑을 열어보니 6캔 중에 무려 3캔이나 당첨되었는데 다시 슈퍼로 바꾸러 가기 귀찮아서 배낭에 넣고 다니다 집에까지 가져왔다. 지금도 내 책방 구석에서 나를 노려 보고 있다.
 

지금 혹시 미얀마 여행 중이라면 병맥주나 캔맥주 뚜껑을 살펴보라. 혹시 아는가? 5병 시켰는데 5병을 더 마실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올지.
                                                                       

▲ 미얀마 비어와 뚜껑:미얀마 비어 병뚜껑이나 캔 뚜껑에는 행운이 숨어 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술 맛을 가려 마시지는 않는다. 마실 때 약간 쌉쌀하다거나 목 넘김이 조금 독특하다는 정도의 차이는 느끼지만 그것으로 술 맛의 좋고 나쁨을 따지지는 않는다. 가끔 기회가 되어 지인들이 가져오는 좋은 포도주라는 것도 마셔보면 그 포도주가 그 포도주 같다. 그렇다고 미맹은 아니어서 레드와 화이트 맛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맥주 맛도 마찬가지다. 맥주의 맛은 살아 있는 효모라느니, 물이 좋아야 한다느니 하는 의미의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맛의 차이를 전혀 못 느낀다는 것은 아니다. 미세한 차이는 있으나 굳이 그것으로 술 맛을 평가하지 않으며,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술이면 다 좋다'라는 주의자다. 그럼에도 미얀마 비어 맛은 지금까지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현지 가이드는 미얀마 비어의 진짜 맛을 보려면 병맥주보다 생맥주를 마셔보라며 권했다. 어딜 가던 주종을 안 가리는 스타일이니 둘 다 맛이 좋았고, 약간 다른 점이라면 생맥주가 약간 더 강한 맥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미얀마 비어는 우리나라 맥주보다 맥아를 더 많이 넣어 만들기 때문에 훨씬 진한 맥주 맛을 느낄 수 있단다.

▲미얀마 비어 생맥주: 약간 더 강한 맛이 난다.

진정한 술 맛이란?

나는 '술 맛'을 잘 몰라도 '술 멋'은 아는 사람이다. 주력 30여 년의 술꾼으로 맥주 맛의 기준을 말하자면 맥주 맛은 맥아나 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시는 장소와 마시는 사람이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미얀마 비어의 참 맛은 와끌래타잉(미얀마 대나무 의자)에 누워 미얀마 밤의 별 바다를 보며 마실 때 최고로 느낄 수 있다. 물론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라면 그 맛은 백 배가 된다.
 
그나저나 나는 도대체 술을 얼마를 마셔야 술 맛을 알게 되는 것일까? 아직까지 술 맛을 모르니 더 마셔야 알 수 있을 텐데 나이가 들수록 주량은 점점 약해지는 것 같고 큰일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젊을 때 더 마셔두어야겠다. 그나저나 저 당첨된 미얀마 비어 캔 뚜껑은 언제 바꾸러 가지?

                                                                                

▲미얀마 비어

※알아두면 좋은 정보: 미얀마 전통술 탕어옛(htan ayet)

미얀마에는 미얀마 비어 외에 '탕어옛(htan ayet)'이라는 전통술이 있다. 이 술은 사탕야자나무의 수액으로 만든 술이다. 높이가 20m도 넘는 엄청난 높이의 사탕야자나무 꼭대기에서 채취한 수액을 탕예(htan ye)라 부르는데 이 물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이다. 탕예는 당도가 높아 우리나라 조청 만들듯이 끓여서 졸이면 갈색의 설탕(사탕)이 된다. 미얀마 재래시장에 가면 갈색의 사탕을 쌓아 놓고 파는 가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미얀마 선생님 말에 의하면 사탕야자나무를 신비의 나무라고 부른다 한다. 이유는 사탕야자 수액은 3번의 변신을 하기 때문인데, 처음 6시간 동안은 '정글 주스'라는 이름의 음료수가 된다. 이 탕예는 6시간이 넘으면 자연발효되는데 찹쌀가루를 섞어 발효를 촉진시키면 우리나라 막걸리와 같은 술이 된다. 이 술을 다시 증류하여 만든 술이 바로 탕어옛(htan ayet)이다.
   
우베인 다리 중간에서 탕예 발효 술을 맛볼 수 있었는데 막걸리보다는 약간 독했고 맛은 시큼하고 달착지근한 것이 마실만 했다. 미얀마를 다니다 보면 노점이나 시장에서 야자 잎이나 바나나 잎으로 싼 전통술을 파는데 바로 이 술이 '탕어옛(htan ayet)'이다. 알코올 도수 35~40%로 우리나라 안동소주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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